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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신현원창동) 원창동(元倉洞)

분류
서구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2437
고종 21년(1884) 삼남(三南; 충청·전라·경상도) 지방의 세곡을 서울로 운반할 때 임시로 보관하기 위한 전조창(轉漕倉)이 이곳에 있었기에 ‘원창동(元倉洞)’이라 하였다.
1884년 전조창 설치와 동시에 선박의 출입을 용이하도록 인공축항을 만들어 포리항이 되기도 하였다.

갯말[浦里]
원창동의 원래 마을로 갯골창 섶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환자곶말[還上串村]
이곳에 환곡(還穀)을 보관하던 환자창고[還上倉庫]가 있었기 때문에 마을 이름이 생겼다.

도촌(島村)
환자곶 마을 한 복판에 섬같이 우뚝 솟은 곳을 도촌이라 부른다. 옛날에는 작은 섬이었는데 1884년 전조창을 세울 때 육지로 변했다.

노염밭[露鹽田]
도촌이 육지로 변해 도촌 주위에 조수물이 드나들어 노염이 생기게 되었고, 주민들이 육지화된 밭을 일구어 노염밭이라 불러오고 있다.

간데말
‘가운데 마을’의 변음으로 윗말과 아랫말의 중간에 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밤섬말[栗島里]
갯말 서쪽 바다 가운데에 있었던 섬 마을로, 섬의 형상이 마치 밤톨처럼 생겼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포리항구
고잔(高棧)이 고려때 항구라면 포리는 조선조 말기의 항구이다. 서해바다의 크고 작은 섬들은 경서동과 원창동이 관할하고 있다. 율도(栗島)는 1970년 경인에너지 설치때 육지화되었지만 장구섬[長丘島]과 응섬(鷹島)은 1917년 부천군시절 면리 구역변경때 고잔리 소속의 세루(細於島)를 포리에 속하게 하고, 포리소속의 장구섬은 영종면 중산리에, 응섬은 운북리에 편입시켰다.
세어도는 가늘고 길게 늘어진 섬의 형국을 뜻한 이름이고, 서천도(西遷島)라고 불리기도 하였는데 이는 세어도가 서쪽 저 멀리 떨어져 있어 생긴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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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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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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