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李穡 : 조선 초기)
고려 말기에 출사하여 나라에 많은 공적을 쌓고 공민왕 22년(1373) ‘한산군(韓山君)’에 봉해지기도 하였으나,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과 함께 고려를 뒤엎고 등극하자 출사 종용을 물리치고 유배 당한 끝에 여강(驪江)으로 가던 도중 죽었다. 이 색은 14세 때에 한시사(韓侍史), 장의랑(張儀郞)과 더불어 강화 교동 화개산(華盖山) 갈공사(葛公寺)에 들어가 호연지기를 수련하였다. 단군의 성역을 찾아 순례하고 참성단의 천재궁(天齋宮) 석벽(石壁)에 시판을 음각하기도 했는데, 오랜 세월 풍상에 깎이고 마모되어 글자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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