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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이칙(李則 : 조선 연산군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802
부평 이씨로 좌의정 이원(李原)의 손자이다. 세조 8년(1462) 문과에 급제하여 장흥고직장(長興庫直長)이 되었고, 성종 초에 대사성(大司成)이 되어 교학진흥(敎學振興)에 힘썼다. 그 뒤 여러 벼슬을 거쳐 대사헌(大司憲)으로 승진되었고, 임사홍(任士洪)의 간악함을 거리낌없이 탄핵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그를 선견으로는 중종 때 김안로(金安老)를 내쫓은 대사헌 이항(李沆)을 닮았으며, 직인으로는 당나라 초의 정치가인 위징(魏徵)을 닮았고, 덕망은 양성(陽城)에 비할 만하다고 하였다. 시호는 ‘정숙공(貞肅公)’이며, 무덤은 화수동에 있었다가 석남동으로, 다시 김포로 옮겨졌는데, 그의 비석은 미술적 가치가 높은 귀수(龜首)와 용문조각(龍紋彫刻)으로 조형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의 후손이 18대 째 인천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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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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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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