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일호(黃一晧 : 조선 인조 연간)
황일호는 인조 13년(1635)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고, 병자호란이 일어나는 다음해에 장령이 되었다. 난의 발발과 동시에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 독전어사(督戰御史)로 전공을 세웠고, 척화를 적극 주장하였다. 1638년에 의정부윤으로 있을 때 최효일(崔孝一) 등과 만주에서 활약했다는 장사(壯士) 차례량(車禮亮)이라는 용기 있는 사람과 모의하여 청주(淸主)를 암살하려는 거사에 가담한 사실이 첩자에 의해 발각되어 청나라에 잡혀갔다. 인조는 천금의 배상을 주고서라도 구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참형당했다. 그의 충절을 기리어 좌찬성에 증직하였고, 시호는 ‘충렬(忠烈)’이라 하였다. 그의 고향인 강화 충렬사를 비롯하여 부여, 운봉, 의주 사당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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