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엽(李寅燁 : 조선 숙종 연간)
이인엽은 숙종 12년(1686)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숙종 15년(1689) 서인이었던 그는 숙종이 장희빈 소생을 원자로 정하려는 사건을 계기로 정계에서 물러났었다. 이어서 숙종이 중전 민씨마저 폐하려 하자 전(前) 한림이자 판서였던 오두인(吳斗寅), 전(前) 참판 이세화(李世華), 전 응교 박태보(朴泰補) 등 재야 서인들과 더불어 반대 상소를 올리는 데 참여하였다. 그 뒤 정계에 복귀하여 양역변통(良役變通)을 주관하였으며, 숙종 30년(1704) 강화부 유수로 발탁되었을 때 강화부 방비를 위한 진(鎭)의 설치에 관한 그의 견해가 탁월하다고 인정받아 후대까지 종종 인용되고 있다. 정조 때에 이르러 실제 시행에 옮겨지기도 하였으며, 많은 치적을 남겨서 사당이 세워졌다. 벼슬이 이조판서, 홍문관 대제학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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