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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이기혁(李基爀 : 조선 고종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710
이기혁은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서 원병 4만을 인솔하고 제독으로 임명되어 들어 온 이여송(李如松) 장군의 10대손이며, 강화읍 용정리(龍井里)에 낙향한 오위장(五衛將) 면(?)은 그의 5대조에 해당한다. 그가 정착한 고장은 속칭 이병사(李兵使) 댁 또는 정평부사(定平府使) 댁으로 불리어 왔다. 강화읍 갑곶진 위엔 여송 제독의 동생인 명나라 총병(摠兵) 이여매(李如梅)와 부친 성량(成樑)을 모신 사당 보명사(保明社)가 있었는데, 그후 용저리 행촌(杏村)으로 옮겼으나 시세에 따라 인천으로 이사하였다.
여매의 5대손 면(?)이 비로소 갑곶리 만수산 남록에 자리하였는데, 그곳 명칭을 그때부터 보명골[保明洞]이라 하였다. 또 그 5대손에 해당하는 기혁은 병사(兵使)이며, 둘째 아들 준호(浚鎬)가 정평부사(定平府使) 겸 병마절제사로서 이 고장으로 낙향한 이래 6대에 걸쳐 무관으로 나라에 이바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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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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