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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이경호(李京鎬 : 일제시대)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1025
이경호는 예수교회 지도자로서 1919년 3월 1일 옹진 지역에 독립선언서가 다량으로 전달될 때, 33인 중 한 분인 박희도(朴熙道)의 처남 김명신(金明信)을 통해 제일 먼저 전해 받았다. 그는 이 날 오후 2시경 옹진예배당에 남녀 교인들을 모아놓고 그 주지(主旨)를 설명함으로써 옹진 지방의 3·1 운동이 시작되었다. 3월 3일 마산 장날에는 최희승(崔熙昇), 김선수(金善洙) 등에 의하여 만세의 함성이 울려 퍼지게 했고, 천도교 옹진교구장 정한영(鄭漢永)으로 하여금 즉각 각 면의 대표를 임명하여 시위를 지령토록 했으며, 다음 장날인 3월 8일에는 천도교인들이 주동이 되어 옹진읍에 만세시위가 전개되게 하였다. 그 다음 장날인 3월 13일에는 앞선 면에서의 주동 인물들이 일본 경찰에 구속된 뒤였으나, 천도교인들을 중심으로 다시 읍내에서 군중 시위를 일으켰으며, 이어 군내 각 면 단위로도 파급시켜 4월 중순까지 만세시위가 이어지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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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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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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