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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이민창(李敏昌 : 생몰 미상)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1406
이민창은 서울 태생으로 한일합방 전의 초창기 서울의대(醫大)인 한성병원(漢城病院) 부속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개업을 하였으나, 한일합방이 된 후 ‘큰 의사는 나라의 병을 고치고 그 다음으로 사람의 병을 고친다(上醫救國 其次救人)’라는 고전(古典)의 뜻에 따라 해삼위(海蔘衛 : 블라디보스톡)로 떠나가 구국운동을 감행했다. 그러나 가족들이 향수(鄕愁)를 못 이겨 하자 함경도와 황해도로 의원 노릇을 하며 전전하다가 드디어 인천에 정착했다.
1941년에는 일제가 한일합방 당시 30년이 지나면 다시 한국을 독립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이제 한국인이 한국을 다스려 나가도록 일제가 물러나야 한다는 벽보와 전단을 손수 만들어 길가 벽에 붙이고 거리에 뿌리고 다니며 외쳐댔다. 그 때문에 곧장 일본 경찰에 구금되고 형을 선고받았으나 형무소에 가서도 끝내 굽히지 않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8·15광복과 함께 형무소에서 풀려나자 광복을 맡은 기쁨을 가슴에 간직한 채 두문불출하며 일체 정치 방면에는 관여하지 않고 인술을 베푸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나라의 병이 고쳐졌으니 이제 사람의 병을 고치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간 것이다. 이후로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료로 병을 고쳐주었으며, 여생을 가난하게 그러나 고고하게 지내다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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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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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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