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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총서

자료 속 인천(3)

담당부서
문화재과 역사자료관 (032-440-8382)
작성일
2014-07-21
조회수
3809
우리나라는 광복 후 한동안 다양한 성향의 정치세력들이 난립하여 혼란을 거듭하였다. 미군이 가장 일찍 진주하였다는 인천지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美軍政을 거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1948.8.15) 미군정 때 잠시 제물포시(1945.10.10∼27)로 바뀌었던 인천부도 1949년 지방자치법에 따라 경기도 인천시로 정립되었고(1949.8.15), 시의회도 구성되었으며 시장 또한 간선으로 선출되었다(1952). 그리고 이들에 의하여 일본의 잔재와 미군정의 과도기적 조치들이 하나하나 청산되고 일신되어 갔고, 경제 안정과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 시책도 속속 마련되었다. 여기 소개하는 자료는 광복 후인 1945년 9월 1일 ~ 1948년 8월 15일까지 美軍政期 3년간의 기록으로 당시 신문기사를 발췌하여 설명을 첨가한 것이다. 광복 후 인천의 모습을 짐작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는 측면에서 간추려서 소개한다. 2004년 인천광역시 역사자료관에서 『美軍政期의 인천자료』로 《인천역사문화총서》시리즈의 일환으로 출판된 바 있지만, 여기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 자료에 주석을 달아 당시의 역사적 변화와 정세를 소개하였다. 다만, 자료에 따라서는 사건의 발생시점과 신문에 게재된 시기가 약간의 시간적 간극이 있음을 밝혀둔다. 지면 사정을 고려해 몇 차에 나누어 게재한다.
첨부파일
자료 속 인천(3)-미군정기 인천자료(1)20140721.hwp 미리보기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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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4-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