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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회보

「5월의 호국인물」개성 송악산 육탄 10용사(勇士)

담당부서
자치지원과 (032-440-2430)
작성일
2003-09-30
조회수
1273
전쟁기념관(館長 朴益淳)은 1949년 5월, 북한군의 기습작전으로 점령당한 개성 송악산을 탈환하고 장렬히 산화한 육탄 10용사를 '5월의 호국인물'로 선정 발표했다.

1949년 5월 3일 새벽, 북한군은 국군의 전방 방어진지 구축작업을 방해하고 남침전에 국군의 전투력을 탐색하기 위해 개성 송악산의 아군진지를 기습 침공하여 점령했다. 당시 북한은 소련의 원조를 받아 체계적으로 군비를 증강하며 남침을 준비하고 있었고, 남한은 1948년 정부수립과 함께 미군이 수행하던 38선 경계임무 인수와 함께 38선 부근 산악 요지에 진지를 구축하는 작업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송악산 진지를 빼앗긴 다음날 새벽 아침 1사단 11연대는 빼앗긴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공격을 했으나 북한군이 구축한 특화점 진지에서 빗발치듯이 뿜어대는 기관총 사격으로 공격이 좌절되고 아군의 희생만 늘어나자 적의 토치카를 제압하지 않고 서는 공격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진지 재탈환을 위해 특공대를 편성키로 했다. 이때 제일 먼저 손을 들어 특공대를 지원한 사람이 당시 하사관 교육대 1소대 1분대장이던 서부덕 상사였다. 분대장인 서상사가 자원하자 그의 분대원인 김종해, 윤승원, 이희복, 박평서, 황금재, 양용순, 윤옥춘, 오제룡, 박창근 하사 등 그의 분대원 전원이 특공대를 자원했다.

이들 10명의 부하사관들은 바로 그 날, 각자 박격포탄과 폭약을 가슴에 안고 각각의 정해진 목표를 향해 돌진, 자폭함 으로써 적의 토치카를 파괴했다.

이들의 희생으로 드디어 아군은 빼앗겼던 고지를 재탈환했다. 이들의 불타는 조국애와 희생정신은 전군(全軍)의 귀감이자 오늘날까지도 전설적인 군인정신의 표상이 되엇고 이에 정부는 서부덕 이등상사는 소위로, 9명의 하사에게는 특무상사 특진과 함께 각각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했다.

5월 2일 전쟁기념관 호국추모실에서는 유족과 육군 주요인사가 참석한 가운데 고인들을 추모하는 현양행사가 거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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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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