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현(文武鉉)

표정보
기본사항 1899년 4월 17일생으로 본적, 출생지, 주소는 모두 京畿道 富川郡 龍遊面 南北里(경기도 부천군 용유면 남북리) 636번지임. 직업은 농업이고 키는 163cm 가량이며 이명은 文武年임. ※ 인물카드에는 文武鎬(문무호)로 등록되었으나 판결문과 관련 자료에는 文武鉉이란 인물은 나오나 문무호는 없음. 또 판결문에 따르면 문무현의 주소가 남북리 636번임. 따라서 이 카드는 문무현으로 추정되고, 문무호의 ‘鎬’는 ‘鉉’의 흘림체를 잘못 판독했을 가능성이 높음.
주요행적 1919년 9월 27일 보안법 위반으로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20년 3월 28일 특별사면(恩免)으로 석방됨(지문번호 34744/33634).

기타사항

거주지와 체포, 재판 시점 등을 볼 때 용유도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 관계자임.

관련자료에 따르면 “용유면(龍遊面) 남북리(南北里)에 사는 조명원(趙明元)·조종서(趙鍾瑞)·최봉학(崔鳳鶴)·문무현(文武鉉) 등은 3월 23일과 24일에 모여 독립운동의 계획을 세웠다.

1. 우선 독립운동 단체의 이름을 혈성단(血誠團)이라 칭할 것.

2. 3월 28일을 기하여 거사할 것.

등 2가지를 결의하고 광목으로 큰 태극기를 만들고 혈성단 4명의 이름을 각각 기입하여 ‘4월 28일 독립운동 거행식을 관청리에서 갖고자 하오니 모두 모이도록 하라.’는 격문을 일일이 봉투에 넣어 4명이 분배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날로 그 부근 남북리·거잠리(巨蠶里)·을왕리(乙旺里)·덕교리(德橋里) 등을 다니며 글을 아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4월 28일에 관청리 광장에 모여 큰 태극기를 중앙에 달고 기세를 떨쳤는데 1백 50여명의 군중이 모였다.”

“⑤ 해독가능자에게 전달 : 경기도 부천군 농업종사자 조명원(趙明元)은 3월 24일 조종서(趙鍾瑞)·최봉학(崔奉學)·문무현(文武鉉) 등과 혈성단(血誠團)을 조직하고 격문 80여종과 신서(信書) 1통을 작성하였다. 이들은 각자 이것을 “문자를 해독하리라 생각되는 이민(里民)에게 배부, 조선독립 시위운동에 참가하도록 선동하여 두었다가”, 3월 28일 전에 선동해 둔 사람과 기타 150 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만세시위을 하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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