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봉진(劉鳳鎭)

표정보
기본사항 1887년 3월 31일생으로 본적지는 京畿道 江華郡 吉祥面 溫水里(경기도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501번지이고 출생지와 주소는 京畿道 江華郡 郡內面 官廳里(경기도 강화군 군내면 관청리)임.
키는 156cm가량이며, 체포당시 직업은 금은세공업임. 신문조서에는 본적지와 주소가 온수리 501번지이고, 관청리는 출생지라 함.
주요행적 1920년 3월 1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당일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다가 같은 해 9월 13일 만기 출소함(지문번호 28777/76898).

기타사항

강화 3.1만세운동의 중심인물임.

독립운동사 제2권 : 삼일운동사(상) 제3장 경기 서부지방 제4절 강화군에 따르면 “강화군 부내면(府內面) 신문리(新門里), 즉 강화읍에서는 3월 5, 6일경에 군중이 모여 경찰서 앞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다. 1천여 명의 군중이 유봉진(劉鳳鎭) 등의 주동으로 경찰서 앞에 모여 그 동안 검거된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하였다. 이 때 강화경찰서 경부 이해용(李海用)이 나서서 군중들의 요구를 들어 줄터이니 해산하라고 하였다.…”라고 함.

1945년 자유신문 기사에 따르면 12월 20일 김구 주석 참석하에 강화에서 열린 임시정부 환영회에서 유봉진이 환영사를 하고 김구 선생의 답사에 이어 임시정부 만세, 김구 주석 만세, 안중근 의사 만세의 만세 삼창을 선창했다고 함.

세 차례에 걸친 신문조서가 남아 있어 강화지역 3.1만세운동의 경과와 유봉진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됨.

해방 이후에도 임시정부 강화 환영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강화 지역사회의 중심인물로서 꾸준히 활동한 것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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