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혁성(沈爀誠)

표정보
기본사항 1888년 8월 15일 생으로 본적과 출생지, 주소는 모두 京畿道 富川郡 桂場面 梧柳里(경기도 부천군 계양면 오류리) 22번지임(현재의 계양구 오류동). 키는 155cm가량이며 직업은 농업임.
주요행적 1919년 11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서대문감옥에 수감되었다가 1920년 4월 10일 가출옥함(지문번호 37777/83797).

기타사항

황어장터 만세운동의 주동자임.

독립운동사 제2권:삼일운동사(상) 제3장 경기 서부지방 제2절 부천군

“부천군(富川郡) 계양면(桂陽面) 장기리(場基里)에서는 3월 24일 오후 2시에 심혁성(沈爀誠)등이 주동이 되어 장터의 3백여 명의 군중과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시위를 하였다. 때마침 부내 주재소 경찰 4명이 이곳을 경계하다가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그들은 현장범이라는 명칭으로 심혁성을 끌고 면사무소로 들어갔는데 면사무소에서는 심혁성을 놓아 주도록 타일렀으나 일본인 경찰이 주재소로 데리고 갔다. 이것을 본 군중은 뒤를 따르며 독립만세 시위를 하며 일본 경찰에게 심혁성을 놓아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 중에도 일본경찰과 안면 있는 임성춘(林聖春)은 단독으로 일본 경찰들에게 석방을 교섭하는 한편 뒤로는 여러 사람을 시켜 따라가 심혁성을 탈취하라 하였다. 약 1백여 군중은 그의 말대로, “어서 그 사람을 놓아 달라 !”고 함성을 올리며 경찰의 앞길을 막았다. “그놈을 붙잡아라!” 

마침내 분노는 터졌다. 군중은 실력으로 심혁성을 탈취하려고 하자 일인 경찰은 취조하고 곧 석방하겠다고 교활하게 무마하려 하였다. “안 될 말이다.”이 말과 동시에 누군가 그 일본 경찰의 뒷통수를 치자 군중이 일제히 몰려와 심혁성을 탈취하였다.…“

심혁성이 항소한 후 공소기각 판결문에 따르면, “제1. 피고 심혁성은 전부터 일한합병을 좋아하지 않고 항상 조선독립을 희망하고 있던 바, 대정 8년 3월 1일 천도교주 손병희(孫秉熙) 등이 조선민족독립선언을 한 다음 조선 각지에서 독립시위운동이 시작되자 그 취지에 찬동하여 이와 동일한 행동을 하려고 동년 3월 24일 오후 2시 경 경기도 부천군 계양면 장기리 시장에서 태극기(증 제1호)를 휘두르며 그 곳에 모여든 군중을 선동하여 같이 조선독립 만세를 절규함으로써 독립시위운동을 함으로 말미암아 치안을 방해하고,”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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