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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추홀콜센터어원

미추홀은 문헌에 나타나는 인천 최초의 지명으로, 『삼국사기(三國史記)』「백제본기」백제 시조 온조왕 즉위년조에 따르면, 부여계 고구려 유민인 온조와 비류가 남하하여 온조는 위례성에 나라를 세우고, 비류는 미추홀에 나라를 세웠습니다. 또한 미추홀은 지금의 인주(仁州)라는 기록이 있어 미추홀이 인천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학자에 따라서 ‘미’를 ‘물’로, ‘홀’을 ‘고을’로 풀이하여 한자로 ‘수성(水城)’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땅이 습하고 물이 짜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일치합니다. 특히 ‘홀’이라는 단어는 ‘성·고을’을 뜻하는 고구려어로, 한강 하류에 정착한 백제의 건국 세력이 자신들의 언어인 고구려어로 이 지역에 이름을 붙였을 가능성을 시사해 줍니다.

『삼국사기』「백제본기」에서는
“백제의 시조는 온조왕이며, 그의 아버지는 추모(鄒牟)이다.
혹은 주몽이라고도 한다. …… 비류는 백성들을 나누어 미추홀로 가서 살았다. ……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짜서 편히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위례성으로 돌아와 보니…….”
라고 하여, 백제 시조 온조왕 즉위년조에 미추홀의 지명이 쓰여지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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