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천설화

하음 봉씨의 발상지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1939
지루한 장마가 끝나자 강화도 하점면에 사는 한 노파가 밀린 빨래를 들고 집을 나섰다. 노파가 집 가까운 연못에서 빨래를 시작하려고 할 때 갑자기 하늘에서 연못 한가운데로 오색 무지개 빛이 비치고 이어 연못의 물이 솟구치면서 옥(玉)으로 만든 함이 하나 올라왔다.
노파는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럽게 옥함을 건져 올려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으앙~ 하는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비단에 싸인 잘생긴 옥동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노파는 너무나 놀라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러나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했다.
“이 아기는 하늘에서 내려 준 귀한 아기가 틀림없어. 나와 같은 미천한 사람이 키울 것이 아니라 나라님께 바쳐야 한다.”
노파는 서둘러 임금이 사는 대궐로 가서 임금께 아기를 얻게 된 이유를 자세히 말씀드렸다.
“상감마마, 이 귀한 옥동자는 반드시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할 것입니다. 부디 거두어 주시옵소서.”
그 아이는 궁궐에서 많은 사랑을 받으며 무럭무럭 잘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특히 사랑하던 예종 임금이 손수 아이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
“여봐라, 오늘부터 이 아이의 이름은 장차 커서 나라를 돕는 훌륭한 일꾼이 되라는 뜻에서 ‘도울 우(佑)’라고 부르기로 한다.”
우는 어려서부터 신동이라 불릴 만큼 모든 것이 뛰어났다. 3살에 천자문을 모두 외웠고 9살 때는 어떠한 질문에도 막히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090살 때에는 과거에 장원 급제까지 했다. 사람들은 그를 정말로 하늘이 내린 인물이라 불렀다.
다음 임금 인종이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우는 예종 임금의 뜻에 따라 어린 임금을 잘 받들어 정승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항상 우의 도움을 고맙게 여기던 임금은 어느 날 많은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우 정승에게 손수 성씨를 봉(奉)씨로 지어 주었다.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우 정승의 이름을 ‘받들 봉(奉)’,‘ 도울 우(佑)’라고 부르시오.”
봉우(奉佑). 하늘을 높이 받들고 나라와 백성을 도와 훌륭한 일을 한다는 뜻이 들어 있는 이름이었다.
훗날 봉우의 5대 손인 봉천우(奉天佑)가 하점면의 고을 원님으로 오게 되었다. 그는 제일 먼저 조상, 봉우가 태어났다는 연못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연못에 절을 올리고 연못의 이름을 ‘봉가지(奉哥池)’라 지었다. 또한 자신이 벼슬을 하게 된 것도 빨래하던 할머니의 덕분이라 생각하고 그 은공을 갚아 드린다는 뜻에서 봉은사(奉恩寺)란 절을 짓고 5층 석탑을 쌓았다.
봉천우의 할머니와 조상에 대한 정성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봉은사라는 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석상각(石像閣)이란 건물을 짓고 그 안에다 할머니의 모습을 새긴 불상을 모셨다.
그리고 뒷산의 이름을 봉천산(奉天山)이라 짓고 그곳에 봉천대를 쌓아 조상을 보내 주신 고마움을 담아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
봉우가 태어난 곳의 이름은 원래 강음현이었다. 그러다가 봉우가 물에서 태어났다 하여 ‘물 하(河)’자를 써서 하음면으로 했다.
그리고는 다시 오늘의 하점면으로 고쳤다고 한다.
지금도 때가 되면 하점면의 하음 봉씨들은 봉우 시조와 할머니에 대한 제사를 드리고 있다.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 문의처 032-440-838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