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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아름다운 보문사 석실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2059
강화도 석모도에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회정대사가 세웠다고 하는 보문사라는 유명한 절이 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르는 곳은 정작 대웅전이 아니고 제2의 석굴암이라 알려진 보문사 석실(인천시 유형문화재 제27호)이다. 커다란 자연 암벽에 동굴과 같은 이 석실에는 23개의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어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불상에 얽힌 첫째 이야기다.
어느 날 마을 어부들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어부들이 그물을 당겨 보니 보통 때와는 달리 묵직한 느낌이 느껴졌다.
큰 기대를 가지고 끌어올린 그물에는 그러나 고기는 한 마리도 없고 돌로 만든 자그마한 불상들만이 있었다. 실망한 어부들은 불상들을 도로 바다에 버리고 다시 그물을 던졌다. 이상하게 그들은 한 마리의 고기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날 밤 한 어부의 꿈에 나이 드신 스님이 나타났다.
“자네가 오늘 바다에서 끌어올렸다 버린 동자 불상은 인도에서 싣고 오다가 배가 파선하면서 물에 빠진 것이다. 그러니 그 불상들을 잘 모시면 자네들은 반드시 부처님이 베푸는 복을 받을 것이다.”
이튿날 동네 어부들은 다시 바다로 나갔다. 그들이 던진 그물에는 어제와 같이 아기 불상 23개가 올라왔다. 어부들은 어제와는 달리 정성스럽게 그 불상들을 모시고 보문사의 석굴로 왔다. 그리고 그 안에다 단을 만들어 석불을 모시고 모두 무릎을 꿇었다. 어부들은 두 손 모아 조용하게 아기 불상에게 자신들의 소원을 빌기 시작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그 후 어부들의 소원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한다.


둘째 이야기.
어느 해 추운 동짓날, 보문사 스님이 팥죽을 쑤어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려고 하는데 아궁이에 불이 꺼져 있었다. 그날 따라 부싯돌도 찾을 수 없고 눈이 많이 와서 마을까지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아랫마을 고씨 성을 가진 어느 집에 보문사에서 왔다고 하며 어린 동자 하나가 불씨를 얻으러 나타났다. 집주인은 이 추운날 어린 동자를 보낸 보문사 주지를 원망하고 어린 동자에게 팥죽을 먹이고 불씨를 주어 보냈다.
이때 보문사의 아궁이에서 갑자기 불씨가 살아났다. 아궁이 옆에 있던 스님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부처님께 팥죽 공양을 올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팥죽 끓이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그리하여 잠시 후 부처님과 다른 스님들에게 맛있는 팥죽 공양을 올릴 수가 있었다.
며칠 후 눈이 녹은 뒤 주지 스님이 마을에 볼일을 보러 왔다가 고씨를 만났다. 그러자 고씨는 어린 동자 생각이 나서 주지 스님에게 약간은 따지듯이 말했다.
“주지 스님, 그 춥던 동짓날 어찌 어린 동자 스님을 눈길에 부싯돌을 얻으러 마을까지 보낼 수 있습니까?”
“예 ? 우리 절에는 동자 스님이 없는데요.”
주지 스님이 볼일을 끝내고 절에 돌아와 석실에 예불을 드리러 갔을 때, 가장 자리에 있는 동자 불상 입에 팥죽이 묻어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번 동짓날 보문사 석실의 석불이 동자 스님으로 변해서 아랫마을 고씨 집에 불씨를 얻으러 왔다가 팥죽을 얻어먹고 간 것이 분명해.”
그 후 보문사 동자 석불들이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를 잘 들어준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였다. 요즘은 보문사가 우리 나라 3대 기도 도량의 하나로 알려져 있어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이는 석실 내의 동자 석불 때문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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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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