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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이건창 이야기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1448
강화도 화도면 사기리에 이승지라고 불리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아들의 결혼 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몇 달 전에 이미 사돈이 될 집안이 정해졌으나 주위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친구 한 사람이 찾아왔다.
“이승지 집안과 같은 가문에서는 큰 제사를 받들고 많은 손님들을 접대할 수 있는 규수가 필요하오. 그런데 혼인을 약속한 집안의 규수는 그렇지 못하다고 하니 혼인 약속을 취소하고 다른 곳으로 혼처를 구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러자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아들이 나섰다.
“아버님, 이번 결혼은 두 집안이 이미 약속을 한 것입니다. 집안끼리의 약속을 어기는 것은 양반 가문에서 할 도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만약 파혼을 하게 되면 그 여자의 앞날을 평생 막아 버리는 일이 됩니다. 그 여자가 조금 부족하다고 하나 그것은 저의 복으로 알고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하오니 아버님, 이번 결혼은 그대로 성사시켰으면 합니다.”
결혼식은 처음 약속대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신부가 시부모 앞에 처음으로 밥상을 올릴 때였다. 밥상을 가지고 들어오면 서 시작해 밥상을 치울 때까지 신부는 시부모님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계속 히죽히죽 웃는 것이었다. 당황한 시어머니가 꾸짖듯 말했다.
“아가야, 아녀자의 몸가짐이 어찌 그리 경솔하고 방정스러우냐?”
그러나 신부는 계속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님, 어젯밤 꿈에 제가 마당에서 마니산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마니산이 점점 작아지면서 저의 뱃속으로 들어왔습니다. 큰 산이 제 뱃속으로요. 히히.”
시어머니가 기뻐서 말했다.
“무엇이? 이거야말로 정말 좋은 꿈이로구나. 아가야, 절대 이꿈 이야기를 어느 누구에게도 하면 안 된다.”
몇 달 후 이승지 집안에 새 아기가 태어났다. 이 아기가 뒷날 조선 후기 큰 학자로 알려진 이건창(李建昌, 1852~1898)이다. 어려서부터 하나를 들으면 열을 깨치는 신동이었던 그는 15살 나이로 과거에 급제하여 조선 왕조 최연소 급제라는 기록을 남겼다.
그가 어릴 때였다.
어느 날 관리 한 사람이 매를 가지고 꿩 사냥에 나섰다. 들판에 나선 관리가 꿩을 발견하고 매를 하늘로 날렸다. 그러나 매는 꿩을 잡지 않고 어느 농부 집 닭을 잡아 가지고 왔다. 그러자 화가 난 닭 주인이 매를 잡아 죽여 버렸다. 관리와 닭 주인 간에 다툼이 생겼고 해결을 보지 못한 두 사람은 고을의 어른인 이승지를 찾아가 판결을 부탁 드렸다. 한참을 생각하던 이승지가 말문을 열었다.
“닭을 잡은 것은 매이기 때문에 관리에게 직접적인 책임은 없소. 그러나 농부는 직접 매를 죽였기 때문에 관리에게 매 값을 물어 주어야겠소.”
농부는 자신의 닭을 생각하며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이때 할아버지 옆에 서 있던 이건창이 나섰다.
“매와 닭이 모두 죽었으니 매 임자는 매 값을 닭 임자는 닭 값을 받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매는 꿩을 사냥하는 새이고 닭은 독수리가 잡습니다. 그러니 매 임자는 매 값이 아니라 독수리 값을 받고 닭 임자는 닭 값을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닭은 값이 있지만 독수리는 정해진 값이 없습니다. 그러니 매 임자만 닭 주인에게 정해진 닭 값을 물어주는 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한참을 생각한 이승지가 말했다.
“들어 보니 그 말이 옳은 것 같소.”
결국 매 임자는 매 값을 보상 받지 못하고 닭 주인만 보상을 받게 되었다. 이건창은 어려운 백성을 위해 많은 일을 하여 백성들의 칭송을 받은 관리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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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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