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천설화

대청도의 시조 신황이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1310
옛날에 신황이라는 한 청년이 살고 있었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았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계모를 들이게 되었다.
신황의 나이 스물이 될 무렵 계모가 자식을 낳았다. 계모는 신황이가 장손이기에 자기가 낳은 자식이 재산을 물려받지 못하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래서 신황이를 없애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의원을 찾아가 후하게 돈을 줄 테니 내가 중병에 걸렸다 하고 오직 장손의 간을 먹어야만 살 수 있다고 말하라고 했다.
며칠이 지난 후 계모는 아파 죽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걱정이 된 남편은 그 마을에서 가장 용한 의원을 불러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의원이 말했다.
“이 병은 오직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장손의 간을 먹어야만 병이 낫겠습니다.” 
아버지는 비록 부인의 병을 고쳐야 하나 아들을 죽일 수는 없어 백정에게 말하여 개를 한 마리 잡아서 그 간을 가져오라 했다. 그렇게 해서 개의 간을 신황의 간이라 하고 주니 계모는 먹지도 않고 병이 다 나았다고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계모는 죽은 줄로만 알았던 신황이가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을 보고 남편이 가져 온 것이 신황의 간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다시 어떡하면 신황이를 죽일까 하는 생각만 했다.
어느 날 계모는 신황이를 불러, 등이 가려우니 등 좀 긁어 달라고 했다. 신황이는 계모의 등을 긁었다. 이때 계모가 좀더 밑으로 내려 긁으라고 했다. 신황이가 계모의 말대로 내려서 긁자 계모는 자식이 어미의 엉덩이를 만진다고 역정을 내며 남편에게 도저히 같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신황이를 불렀다. 
“신황아, 네가 어미의 엉덩이를 만지는 불미한 짓을 저질렀다 하는데 대체 어찌된 일이냐?” 
“아버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어찌 그런 짓을 하겠습니까? 어머니가 저를….” 
모든 사정을 다 듣고 난 아버지는 한숨을 쉬었다.
“신황아, 네가 어미와 함께 있으면 제 명대로 못살겠구나. 어디론가 떠나거라.”
신황이는 마당을 내려와 대성 통곡하며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 부디 편안하십시오.”
하고 큰절을 했다. 집을 나온 신황은 강가로 갔다. 강가에는 빈나룻배 한 척이 있어서 신황은 배에 올라 홀로 탄식하기를,
“천지 신명이시여! 죽은 어머니의 넋이라도 있으면 죄 없는 신황이를 불쌍히 여기시어 어디라도 데려다 주십시오.”했다.
그 배를 타고 물결치는 대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대청도 옥죽포에 닿게 되었다. 대청도 양지동 뒷산에 움을 파고 살다가 관사대에 집을 지어 살았다.
이 신황이가 대청도의 시조라고 전해지는데 현재도 양지동 뒷산 재핏골을 신황당골이라고 칭하며 신황이가 살던 집터에 가 보면 우물이 있다.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 문의처 032-440-838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