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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장사 박장군과 최장군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1620
옛날 덕적도 소야리에 매우 힘이 센 박 장군, 최 장군이란 두사람이 있었다.
박 장군이 태어난 지 불과 한 해 정도 지났을 때였다. 어머니가 젖을 먹여 재워 놓고 외출 후 돌아와 보니 아이가 무거운 솥뚜껑을 열고 손으로 밥을 퍼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 엄마는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한편 걱정이 되었다. 이 아이가 장차 힘이 센 장사로 성장하면 화가 미치지 않을까. 결국 어머니는 눈을 질끈 감고 아이가 힘을 못 쓰게 어깨를 망치로 두들겨 때렸다. 그러나 아이는 끄덕도 없었다.
박 장군은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스무 살 청년이 되었다. 이 무렵 소야리에서 지지라치배를 이용한 조기잡이가 한창이었다. 지지라치배에는 선원이 60~70명이나 되었다. 이 배의 돛은 전라도 김제 만경 벌판에서 부들을 갖다 짚이나 칡을 이용하여 엮어 만들었는데 굉장히 무거워 돛을 세우려면 사오십 명이 함께 당겨야만 했다. 그런데 박 장군은 혼자의 힘으로 돛을 들어 올렸다.
한편 이 마을에 또 한 사람의 장사가 있었으니 바로 최 장군이란 사람이었다. 하루는 이 두 사람이 만나 힘 겨루기를 했는데 텃골통에 있는 큰 바위를 들고 섬 두 바퀴를 돌기로 했다. 박 장군이 한 바퀴를 돌고는 지쳐 버렸는데 최 장군은 바위를 들고 양 겨드랑이에 모래 한 섬씩을 더 끼고도 두 바퀴를 거뜬히 돌았다. 결국 최 장군이 힘 겨루기에서 이겼다.
최 장군이 김제 만경으로 새우젓 장사 갔을 때의 일이었다. 수백 명이 매달려 봇투(수문위의 무거운 돌기둥)를 얹는데 낑낑 매고 일을 제대로 못하자 최 장군이 달려가 이 봇투를 혼자 들어 얹었다.
어느 날, 최 장군이 새우젓이 든 큰 항아리를 지고 고개를 넘어가다 쉬고 있는데 갑자기 못된 놈들이 지나가던 부인에게 시비를 걸고 있었다. 그러더니 부인의 가슴을 헤치고 젖을 빨았다. 최 장군은 이 광경을 보고 벌떡 일어나 호통을 쳤다.
“이런 고약한 놈! 당장 못 물러나느냐.”
젖을 빨던 놈이 말했다.
“네 놈 옆에 있는 새우젓 항아리를 보니 네 놈도 사는 게 신통치가 않은 모양인데 배고파서 계집 젖을 먹는 게 뭐가 못마땅한게냐.”
녀석들이 말이 채 끝나기 전에 최 장군은 놈들의 멱살을 잡고 휙 던져 버렸다. 그 모습이 어찌나 날쌘지 마치 커다란 매가 병아리를 낚아채는 것과 같았다.
여인은 저고리를 매만지면서 최 장군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최 장군과 여인은 이 일을 계기로 부부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 장군 부인 역시 힘이 세었다.
하루는 부인이 굴을 따러 바닷가로 걸어가는데 뱃사람들이 배를 고치고 있었다. 이때 부인이 밧줄과 닻줄을 넘어가자 뱃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계집년이 요망스럽게 첫 출어하는 배의 밧줄, 닻줄을 넘어가느냐.”
부인은 뱃사람들의 말에 개의치 않고 굴을 따러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뱃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은 아까처럼 부인에게 재수가 없다고 툴툴대었다. 부인은‘네놈들 한번 혼 좀 나봐라’하는 생각에 그 배를 통째로 들어 몽땅 마을 어귀에 끌어다 놓았다. 선원들이 배를 제자리로 끌어오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부인을 찾아가 사과했다. 그제야 화가 풀린 부인은 배를 바닷가로 되돌려 놓아 주었다.
기운 센 이 부부가 부부 싸움을 하는데 최 장군이 절구를 들어 지붕 마루 너머로 팽개쳐 버리면 그 부인은 그것을 한 손으로 받아 다시 최 장군에게 집어던졌다고 한다.
이 박 장군, 최 장군 두 장사는 지금도 덕적도의 유명한 장사 일화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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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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