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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백령도와 거타지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2532
신라 진성여왕 때 일이다.
신라 사신 아찬 (阿飡 ) 양패(良貝)가 당나라로 떠나려 할 때, 후백제의 해적들이 바로 당나라로 가는 길목인 진도에 집결해 바닷길을 가로막으려 한다는 소문을 듣게 된다. 그러자 양패는 이에 대비해 활 잘 쏘는 군사 50명을 뽑아 호위하게 하고는 곡도(鵠島, 백령도의 옛 이름)에 당도했다.
그러나 섬에 당도하고 나자 풍랑이 일어 양패 일행은 10여 일 동안이나 섬에 갇혀 있게 되었다. 당나라로 떠나야 할 날자는 자꾸 지나가는데 바람은 좀처럼 잘 줄을 몰랐다. 언제나 떠나게 될 것인가. 답답해하던 양패가 부하 하나를 시켜 점을 치게 했다. 그러자 섬에 있는 ‘신지(神池, 신령한 연못이란 뜻으로 지금의 연지동)에 제사를 지내라’는 점괘가 나왔다.
양패는 그 연못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제사를 지내고 풍랑이 잠들기를 빌었다. 그러자 갑자기 못 안의 물이 한 길 이상이나 용솟음치더니 다시 조용히 가라앉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날 밤 한 노인이 양패의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활 잘 쏘는 군사 하나만 이 섬에 남겨 두고 가면 바람이 진정되고 순풍을 얻을 것이요.”
잠을 깬 양패가 궁사들을 모아 놓고 어젯밤 꿈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는 누구를 섬에 남겨 두고 가야 할 것인가를 물었다. 궁사들은 공평하게 제비뽑기를 하기로 하고 나무 조각 50개에 궁사들의 이름을 써서 물에 던지고는 그 중에 가라앉는 나무가 있으면 그를 남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랬더니 활 잘 쏘기로 소문난 궁사 거타지(居陀知)의 이름만이 물에 잠겨 뜨지 않았다. 이리하여 사신 양패는 거타지를 홀로 섬에 남겨 두고 떠나게 되었는데 기이하게도 순풍을 타고 중국으로 무사히 건너갈 수 있었다.
혼자 남은 거타지는 수심에 잠겨 못가에 앉아 있었는데 돌연 못 속에서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서해의 신이요. 내 말을 잘 듣고 그대로 행해 주시오. 항상 해뜰 때가 되면 한 사미승이 하늘에서 내려와 다라니경을 외면서 이 못을 세 번 도는데, 그러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모두 물 위 에 떠오르게 되오. 그 순간 사미승은 우리 자손들의 간장을 빼먹는데, 식구가 다 죽고 이제 우리 부부와 딸 하나만이 남게 되었소. 부디 내일 그 중이 나타나면 활로 쏘아 우리를 구해 주시오.”
“좋습니다. 활쏘기야 내 특기이니 염려 마십시오.”
다음날 해가 뜨니 과연 사미승이 나타나 주문을 외우고 노인의 간을 빼내려 했다. 그 순간 거타지의 화살이 중의 가슴을 꿰뚫었다. 중은 늙은 여우로 변해 땅에 떨어져 죽고 말았다. 이때 노인이 나와 거듭 고마움을 표시하며 말했다.
“그대가 주신 은혜 갚을 길이 없으니 청컨대 내 딸을 아내로 삼으시오.”
외로웠던 거타지는 기꺼이 그의 딸을 아내로 삼을 것을 승낙했다. 그러자 노인은 딸을 꽃가지로 변신시켜 품속에 넣어 주고는, 곧 두 마리 용을 시켜 거타지를 모시고 사신의 배를 따라가게 했다. 얼마 후 두 마리 용이 호위하는 거타지의 배가 사신의 배와 함께 당나라 국경에 도달했다.
당나라 사람들이 보니 두마리 용이 신라의 배를 호위해 오는 것이 아닌가.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당 황제는 신라 사신들은 반드시 비상한 사람들이라 하여 특별히 큰 잔치를 열어 주고 후히 상을 내렸다고 한다.
그 후 신라에 귀국한 거타지가 꽃가지를 꺼내자 꽃가지는 여자로 변신했고, 둘은 결혼하여 오래도록 같이 잘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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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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