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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으스스한 이름의 도깨비다리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5786
장사래말이라 불리던 숭의동은 오늘날은 전혀 알아볼 수 없이 변했지만, 1920년대 이전 낙섬 일대에 염전을 축조하며 긴 방죽을 쌓기 전까지만 해도 바닷물이 들어오는 갯가였다. 1903년 장천리라는 지명으로 바뀌었던 것을 보아도 이 지역에 사행천(蛇行川)처럼 길고 구불구불하게 흐르는 개천이 있어서 장사래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장사래말은 1906년에는 여의리, 장천리, 독각리로 나누어지는데 이 독각리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독갑다리라고 부르는 곳이다. 
이 독갑다리에 대해서는 외다리를 뜻하는‘독각(獨脚)’에서 유래했다는 등 몇 가지의 해석과 견해가 있다.
아무튼 장사래말이나 독각리 같은 명칭이 사용된 사실을 미루어 볼 때 예로부터 이곳에 개천이 흐르고 있었고 그 개천이 적어도 다리를 놓아야만 건널 수 있을 만한 크기였을 것이라는 점은 확실히 증명이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갑다리의 위치는 숭의동 로터리에서 음식점 평양옥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면서 만나는 지역 일대이다. 많은 수의 자동차와 공장 기계 부속품 상회들, 순대를 파는 집, 술집들이 뒤섞여 있는 골목에서 경인로로 나서는 길목 즈음이다.
‘독각’ 또는 ‘독갑’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앞에서 말한 대로 첫째는‘긴 널조각 하나로 걸쳐놓은 외나무다리’라는 뜻의 우리말 쪽다리나 그냥 외나무다리를 말한다.
두 번째 이야기로는 옛날, 이곳이 바다와 닿아 있어 해상 거래가 쉬워 옹기장수들이 많이 모여들었는데, 여기서 독을 사고 팔 때 주고받던‘독 값’이 ‘독갑’으로 바뀌었다는 해석이다. 또는 장독과 같은 독에 흙을 채운 뒤 이를 다리 기둥으로 삼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이 동네 주변에 도깨비 산이라고 불리던 산이 있었기 때문에 그 밑의 다리를 도깨비다리라고 불렀고 그 다리 이름에서 동네 이름이 나왔다는 설도 있다.
일제 때 지금의 숭의공설운동장 야구장 정문 앞 도원산 밑의 옛소방서가 있던 마당에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화장장이 있었고 지금 중앙여상고 자리에는 덕생원이라는 전염병 중환자 격리 병원이 있었는데 당시 번화가였던 중구, 동구 지역에서 보면 외지고 음산한 죽음의 변두리 언덕이라는 이미지가 도깨비 이야기로 발전하고 마침내 도깨비다리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도 분명치는 않은데, 이 부근에 있었던 다리 때문에 생긴 이름인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물론 그것이 그 개천이고 그 다리였는지 모르나 60년대까지만 해도 순천병원 앞에 낙섬 쪽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제법 큰 개천이 있었고 규모는 크지 않았으나 돌다리가 하나 남아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그 개천도 복개되고 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옛 모습을 알 길이 없다.
앞서 말한 여의리와 장천리, 독각리는 1914년 부천군으로 편입되면서 한데 통합되어 장의리가 되는데 이는 장천리와 여의리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지은 이름이고, 다시 이 장의리가 광복 후인 1946년 1월 숭의동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숭의(崇義)’는 당시 광복을 경축하면서‘옛 신령들을 숭상해 뜻을 이루자’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말뜻은 좋은지 모르나 결국 우리 지명이 본래 가지고 있던 토속적인 정서나 의미, 그리고 나름대로의 지역 역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억지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한편 2001년에는‘한국 방문의 해’를 맞아 향토 사학자와 주변상인들이 이곳에 독갑다리의 유래를 알리는 비석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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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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