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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여덟 장사의 전설을 지닌 장자골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4093
남동구 장수동에 장자골이라는 동네가 있다. 장자리라고도 부르던 장자골은 다른 지역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지명인데 대개는 ‘부자가 살았던 마을’이 아니면‘맏아들들이 살았다’는 전설을 가진 마을이다. 장자골은 또‘장사골’을 뜻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이 동네에 살았다는 여덟 장사의 전설 때문이다. 
옛날부터 이곳에는 유난히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일어난 후 나라 살림이 몹시 피폐해지면서 전국 곳곳에 도둑이 들끓게 되었다. 장자골도 예외는 아니어서 도둑들이 노리는 동네가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동네 주막에 수상한 행색의 장정들이 찾아와 술을 먹고도 영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이었다.
“손님들, 이제 그만들 드실 겁니까?”
“네, 술은 됐고, 우리 좀 앉아 쉬다 가겠소. 먼 길을 걸었더니….”
세상인심이 매우 흉흉한 때라 주모는 대뜸 수상한 생각이 들었다. 주모는 슬며시 부엌 한 구석으로 남편을 불렀다.
“여보, 저 사내들 행동이 아무래도 예사롭지가 않아요. 저렇게 가지 않고 있는 게 어두워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요. 당신 어서 가서 여덟 장사에게 알리세요. 그 동안은 내가 잘 지켜보고 있을테니까요.”
“알았소. 당신, 조심해요.”
주모의 남편은 한달음에 달려가 부인이 말한 그대로 동네 장사들에게 수상한 사내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알았소. 어디, 이놈들을….”
소식을 들은 동네 여덟 장사는 함께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 한밤이 되자 마침내 사내들이 동네 부잣집의 담을 넘어 들어가 도둑질을 시작했다. 이때 여덟 장사가,
“네 이놈들 거기 섰거라.”하며 달려들어 모조리 붙잡았다.
도둑들은 감히 여덟 장사의 적수가 되지를 못했다. 간단히 도둑들을 붙잡아 포도청에 넘겼다. 이렇게 단번에 도둑을 때려잡았다는 용감한 여덟 장사의 소문이 삽시간에 여러 마을로 퍼져 나가면서 그 뒤로는 다른 도둑들조차 이 마을에는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이 마을에 도둑이 들어오면 마을 장정들이 붙잡아 느티나무에 묶어 놓고 손톱과 발톱을 뽐아 버린 뒤 놓아주어 다시는 도둑질을 못하게 했다는 전설도 있다.
장자골은 작다는 뜻의 우리말 ‘잔’에 성(城) 또는 고개를 뜻하는 ‘자’와 마을을 뜻하는 ‘골’이 합해 생긴 이름으로 보는 것이 옳다는 주장도 있다.‘ 자’는 원래 중세 우리 국어‘잣’에서 바뀐 것으로 원래 말의 뿌리가 같으면서 달리 바뀐‘재’와 함께 땅 이름에 흔히 쓰였기 때문이다. 여기서‘장’은‘잔’의 발음이 바뀐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장자골은 결국 작은 고개 마을’ 정도의 뜻이 되는데, 실제로 이 동네 주변에는 용등산 같은 썩 높지 않은 산들이 둘러 있으니 여덟 장사의 이야기보다는 ‘작은 고개 마을’이 훨씬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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