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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삼면이 바다로 둘러사인 맑고 시원한 청량산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4959
지금은 완전히 도시화 한 연수구 한가운데에 우뚝 서서 서해를 내려다보고 있는 청량산. 옛날에는 삼면이 바다에 둘러싸여 있었다는 이 산을 청량산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그 풍경이 맑고 아름답고 시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옛 서적에도 이 산에 대해 ‘깨끗하다’,‘빼어나다’라는 설명과 함께 청량산이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이밖에도 전해 오는 명칭으로는 청룡산, 청릉산, 척량산 등 몇 가지가 된다. 특히 산이 푸르고 형상이 학과 같다 해서 붙은 청학산이라는 별명도 있다.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청량산이라고 이름을 처음 지은 사람은 고려 공민왕의 왕사(王師)였던 나옹화상이라 한다. 고려 우왕 2년(1376)에 나옹화상이 이곳에 흥륜사라는 절을 세우면서 산 이름도 함께 지었다는 것이다.
다른 전설에 따르면 원래 청량산이라는 산은 중국 산서성에 있는 산으로 일명 오대산이라고도 불리던 산이라고 한다.
중국 화엄종의 고승인 징관조사가 열반에 들며 수행 제자들에 게 이렇게 말했다.
“내 불법은 동쪽 해 뜨는 작은 나라에서 꽃피울 것이다.”
고승의 다비식을 마친 제자 둘은 스님의 말에 따라 백마를 타고 동쪽으로 계속 향해, 마침내 이 산 중턱에 다다랐다는 것이다. 그때 갑자기 말이 멈춰서는 것이었다.
“여보게, 이상하게 말이 멈춰 서서 가지를 않네. 혹시 이곳이 스승께서 말씀하신 곳이 아닐까.”
“맞아. 그런 것 같군. 이 산을 좀 보게. 산서성의 청량산보다 더 아름답구먼.”
두 사람은 말이 더 이상 나아가지 않자 이곳에 자기들이 타고 온 백마의 상을 세우고 중국에 있는 청량산과 같이 산 이름을 청량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청량산은 원래는 척량산(尺量山)인데 발음할 때 ‘청량’으로 들려 잘못 전해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척량’이란 ‘자로잰다’는 뜻인데 이 말은 풍수지리설에서 말하는 ‘금자로 땅을 재는 형세’라는 뜻의 ‘금척량지형(金尺量地形)’을 줄여 쓴 것이라는 설
명이다. 다시 말해서 이 산의 형세가 바로 금자로 땅을 재는 그런 좋은 형세라는 뜻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동춘동의 ‘자앞 마을’을 ‘자[尺]의 앞마을’이라는 뜻으로 푸는데 ‘척량산 앞쪽 마을’이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마을은 1903년 지명을 한자로 기록하며 그 의미대로 척전리(尺前里)로 표기했다.
또 이 산 이름을 청릉산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이 산의 동북쪽 기슭에 청릉이라는 무덤이 있어 산 이름도 청릉산으로 불러 왔다는 것이다. 청량산 동북쪽 기슭에 자리 잡은 청학동의 청릉 마을도 역시 청량산 아래에 있었다는 무덤 청릉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이 무덤이 있었던 곳은 지금의 서해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산기슭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무덤의 위치가 분명치 않다. 이 무덤의 임자 또한 비류라고 하지만 확실하다고 할 수 없다.
문헌에는 ‘문학산 정상에 미추왕의 고도가 있다’든가 ‘인천부 남쪽 10리쯤 된 곳에 큰 산소가 있는데 낮은 담이 둘러쳐 있고 망부석이 흩어져 있는 고총이 미추왕묘’라는 기록이 보인다. 이 기록 속의 무덤이 바로 청릉일 것으로 추측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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