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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깨끔재의 영험한 샘물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3394
서곶과 검단의 해안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커서 썰물 때면 끝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넓게 갯벌이 드러났다. 주로 부녀자들이 이 시간에 갯벌로 나가 낙지, 게, 소라, 조개, 맛조개 따위를 잡았다.
쑥대고잔(현재의 경서동)에 지금부터 100년 전쯤에 절름발이 소녀가 살았다. 천천히 걸을 때는 심하게 기우뚱거리며 걷고 급할 때는 한 발로만 땅을 딛고 뛰어가‘깨끔이’란 별명도 갖고 있었다.
절름발이 소녀는 어머니가 갯벌에 나갈 때마다 오솔길로 좇아나가 작은 언덕에서 어머니와 여인네들이 조개와 게를 잡은 구럭을 이고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어느 날, 소녀는 목이 말랐다. 절름거리며 사방을 살펴보다가 이 고개의 바로 아래 갯벌에서 샘물이 솟아나는 것을 보았다. 소녀는 거기 엎드려 물을 마셨다.
“아, 참 맛있고 달콤하네.”
소녀는 이 물을 매일 마셨다. 그냥 작은 샘물이라고만 여기는데다가, 어른들이 알면 아무것이나 마신다고 야단칠 것 같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어느 날, 소녀는 먼 갯벌에서 돌아오는 어머니를 맞으러 언덕 아래로 달려 나갔다.
어머니가 놀라 소리쳤다.
“얘, 어찌된 일이냐? 네가 절름거리지 않고 달려오다니?”
어머니는 딸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동네 여인네들도 놀란 얼굴을 하고 둘러쌌다.
“네가 무얼 먹었기에 불구된 다리가 나았느냐?”
어머니가 하도 세게 껴안았던 까닭에 소녀는 숨을 몰아쉬며 활짝 웃었다.
“몰라요. 저절로 나았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아라. 무엇을 먹었나?” 
소녀는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손으로 샘물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기 있는 샘물을 매일 마셨어요.”
소녀 어머니와 여인네들은 그 쪽으로 달려갔다. 뭍이 끝나고 갯벌이 시작되는 곳에 모래 앙금이 떠오르며 샘물이 퐁퐁퐁 솟고 있었다.
한나절 동안 갯벌에서 일하느라 목이 말랐으므로 여인네들은 앞을 다투어 샘물을 마셨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렇게 시원하고 맛있는 물은 처음 마셔 보네.”
“몸이 하늘로 붕 뜨는 기분이에요. 좋은 약수가 분명해요.”
사람들은 소녀의 절름발이 다리가 약수 때문에 나은 것이라고는 아직 믿지 않았다. 그냥 갯벌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몹시 목이 말랐고 그 샘물이 시원하므로 습관적으로 매일 마셨다.
그런 가운데 두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갯벌에 나가는 여인네들 중 심한 천식증을 가진 여인이 있었는데 며칠 만에 깨끗하게 나은 것이었다.
“깨끔이가 찾아낸 샘물 때문이에요. 난 알아요. 내 몸이 알고 있다고요. 그 샘물이 내 병을 고친 거라구요.”
그 여인네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집안에 환자가 있는 사람들은 데리고 나와 그 물을 마시게 했다. 어떤 까닭에선지 거기에 가서 엎드려 마셔야 한다고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그래서 환자를 손수레에 싣고 지게에 지고 그 곳까지 데려 왔다.
경서동 사람들은 마을에 환자가 생기면 이 물을 마시게 했고 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쳤다. 그리고 이 샘물을 ‘원전물’이라고 불렀다.
다리를 절던 소녀 깨끔이는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처녀로 성장하여 좋은 배필을 만나 혼인했다. 그녀는 시집가는 날 아침, 그 샘물에 가서 엎드려 물을 마셨다.
“은혜로운 샘물아, 잘 있거라.”
작은 샘은 화답이라도 하듯이 퐁퐁 물을 뿜어 올렸다.
처녀가 시집간 뒤에 마을 사람들은 이 고개를‘깨끔재’라 불렀다.
경서동 사람들은 오랜 세월 그 물을 마셨다. 그래서 그런지 장수하는 노인들이 유독 많았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도회에 나가 생존 경쟁에 지친 사람들은 그곳을 찾아와 물을 마시고 갔다.
이 샘물은 1980년대 서곶 앞바다를 매립하면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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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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