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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설화

원적산의 호랑이굴

출처
옛날 옛적에 인천은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2
조회수
8621

원적산은 깊고 숲이 우거져서 호랑이가 살았다. 그리고 맛좋은 산나물이 지천으로 많아서 음력 삼월부터 석 달 동안 여인네들이 쑥부쟁이와 두릅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루하루 날이 지남에 따라 원추리, 취나물, 고비, 홑잎나물 등을 뜯었다. 산중턱 이상으로 올라가면 참나물, 모시대, 잔대, 참취, 곰취, 단풍취 따위를 뜯을 수 있었다.
“나는 왜 봄이 되면 몸이 나른하고 괜히 가슴이 울렁거리는지 몰라.”
젊은 강화댁이 말했다.
그러자 나이가 엇비슷한 아낙이 대답했다.
“나도 그래. 괜히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거든.”
그러자 몇 살 더 많은 인천댁이 대꾸했다.
“이 여편네들이 봄을 타는군. 그래서 봄바람을 맞고 싶어서 나물 핑계 대고 나온 거군. 하긴 옛날부터 봄은 여인네들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정네들의 계절이라고 했으니까.”
“그럼 남정네들은 가을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서 밖으로 나가고 싶은 걸까요?”
강화댁의 말에 나이 많은 여인이 다시 대답했다.
“그렇지.”
“그랬구나. 그래서 남편이 주막거리 얼굴 반반한 기생년 집에 가고 싶어 안달을 한 거로구나.”
여자들은 고샅이나 우물가에서 나누지 못하는 말들을 실컷 하며 나물을 실컷 뜯어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일행에서 조금 떨어졌던 안산댁이 장벽처럼 막아선 집채 만한 바위 앞에서 소리쳤다.
“이리들 와 봐요. 여기 원추리가 지천으로 많아요.”
여인네들은 모두 그 쪽으로 가서 원추리를 잔뜩 뜯었다.
“우리 낭군이 좋아하는 나물이 이렇게나 많네. 아이 좋아라.”
“원추리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괜히 금슬 좋다고 자랑하고 싶은 거지.”
여인들은 머리에 이고 가기 어려울 정도로 나물을 많이 뜯은 터라 대부분이 이제 산을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여기 낮은 굴이 있어요.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이런 굴이 있네.
아, 그런데 굴속에서 뭔가가 꿈틀거려요. 귀여운 새끼들이에요.”
나물을 이고 가기 쉽게 큰 무명 보자기에 싸서 묶고 있던 여인네들은 그 쪽으로 가서 목을 뽑고 들여다보았다. 얼룩덜룩한 털을 가진 작은 새끼들이 서로 뒤엉켜 자고 있었다.
“저건 호랑이 새끼야! 여긴 호랑이굴이라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뭐라구요?”
여인네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얼른 나물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어흥 하고 산 전체가 울리도록 호랑이가 울었다. 수풀 사이로 황소 만한 호랑이 모습이 언뜻 보였다.
“아이구머니나! 사람 살려욧!”
여인네들은 간이 콩알만해져서 나물 보따리고 뭐고 치마가 벗어지는 줄도 모르고 달려 내려갔다.
호랑이는 몇 번 더 위협하듯이 크게 포효하였으나 다행히도 여인네들을 잡아먹을 생각은 없는지 뒤를 쫓지 않았다.
마을 어귀로 내려와서 여인네들은 길바닥에 털썩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고 십 년 감수했네.”
“아이고, 나는 저승 문고리까지 잡아 보고 온 기분이에요.”
그렇게들 말하며 살아 나온 기쁨을 나누고 있는데 강화댁이 갸우뚱했다.
“이상한 일이에요. 새끼를 가진 호랑이가 왜 우리를 물어다 새끼들에게 먹이로 주지 않았을까요?”
아까 어미 호랑이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안산댁이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중송아지 한 마리를 물고 있었어요. 중송아지를 물어 오지 못했다면 나를 물어다 새끼들에게 줬을 거예요.”
이때부터 호랑이가 무서워서 근방 마을 사람들은 산나물을 뜯지 못했다. 그리고 새끼 호랑이들이 있었던 원적산의 바위를 범바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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