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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강화읍 갑곶리(甲串里)

분류
강화군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635
○갑곶
강화의 옛 지명인 갑비고차(甲比古次)에서 음차(音借) 하여 갑곶이라 하였다.
○금표(禁標)
숙종 29년(1703) 유수부(留守府) 동헌(東軒) 뒷산에 주민들이 방목(放牧)을 금하고 재를 버리지 말라는 표석으로, 방목자장일백대(放牧者杖一百臺) 기회자장팔십대(棄灰者杖八拾臺)라 새겨 세웠던 것을 1969년 갑곶리 비석거리로 옮겼다가 2000년 이곳 강화역사관 앞 광장으로 옮겨 세웠다.
○꽃장산
갑구지 뒤에 있는 높이 120m의 산으로 당집이 있다.
○당고개
당산에 있는 고개로 갑곶리와 용정리를 왕래하는 고개.
○만수동(萬壽洞)
만수산 아래 있는 마을이므로 만수동이라 불렀다.
○먹절
갑곶진 서편에 자리한 마을로 묵왕사란 절이 있어 묵사동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먹절마을로 부르고 있다.
○수문통
갑구지 수문옆에 있는 들.
○알미
갑구지 서남쪽에 있는 작은 산으로 알처럼 생겨 알뫼로 부르던 것이 알미로 되었으며, 그곳 아래에 있는 마을도 알미라고 칭한다.
○용감뫼
장동 뒤에 있는 산.
○장동(長洞)
읍내에서 강화대교 방향으로 그리 높지 않은 등성마루에 자리잡은 긴 마을이므로 장동이라 부르고 있다.
○제물진(濟物鎭) 터
갑구지 위쪽에 있는 제물진의 터.
○진해부락(鎭海部落)
당산 동쪽 진해사 터 아래에 있는 마을이름이다.
○해군사관학교 터
1892년 우리 나라 최초로 진해마을에 해군 사관학교를 설립하고 훈련교관으로 영국인 골월 해군예비역 대위와 어학교사 허치슨 등 2명을 채용하였으며, 1893년 10월 7일 수병 300명을 모집하여 체계적인 훈련을 개시하였다. 그러나 1894년 청일전쟁에서 청군이 대패하자 청국의 원조에 의하여 설립된 학교는 운영을 지속할 수 없어 폐교하게 되었으며 터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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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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