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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동인천동 내동(內洞)

분류
중구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812
내동(內洞)은 구한말 인천부(仁川府) 부내면(府內面) 선창리(船倉里) 지역이다. 부내면이란 지금의 시청 격인 인천부(仁川府) 청사가 있는 곳, 곧 부의 중심 지역이라는 뜻이다. 1883년 인천항 개항 직후 이곳에 통상 업무를 담당하는 인천감리서(仁川監理署)가 생겼는데, 그 역할이 점차 커져 1895년에는 지금의 남구 관교동에 있던 인천부 청사가 없어지는 대신 감리서가 그 역할까지 맡게 됐다. 인천부의 중심지가 관교동 일대에서 이곳으로 옮겨진 셈인데, 이처럼 ‘부 청사가 있는 중심지’라는 뜻에서 1903년 부내면이 생길 때 내리(內里)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뒤인 1912년 일제는 외리의 일부와 내리의 일부를 합해 경정(京町)을 새로 만든 뒤 일본인촌으로 삼고, 나머지 땅은 외리(外里)라 부르며 조선인촌으로 삼았다. 그 뒤 1936년 인천부의 땅이 넓혀질 때 이곳은 ‘경정의 서쪽 마을’이라는 뜻에서 일본식으로 서경정(西京町)이 됐다가, 광복 뒤인 1946년 1월 경정의 일부를 편입시키며 내동이 돼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리(내동)이라는 이름에 대해 한편에서는 이곳이 싸리재[杻峴]의 안쪽이 되기 때문에 우리말로는 안말, 안골 또는 한자말로 내리라 불렀다고도 한다. 이에 반해 싸리재의 바깥쪽은 바깥말, 바깥굴 또는 외리(外里)라고 했으니 이곳이 지금의 경동이라는 해석이다. 선창리에 속해 있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은 개항기까지 주변 상당 부분이 바닷가에 닿아 있었다. 내동은 1977년 5월 인천시 조례에 따라 주변의 경동, 용동과 합해져 행정동으로는 내경동이 됐다. 이어 지난 1998년 11월 인천시의 행정구역 통폐합 방침에 따라 내경동(內京洞)은 인현동과 합해져 현재 ‘동인천동’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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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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