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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동인천동 전동(錢洞)

분류
중구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전동(錢洞)은 구한말 다소면 선창리에 속한 야트막한 산지(山地)였다. 1892년 이곳에는 현대식 화폐를 만드는 기관 전환국이 설치돼 1900년 서울 용산으로 옮겨갈 때까지 운영됐다. 지금은 공영주차장이 들어서 있는 옛 인천여고의 운동장 자리가 바로 전환국이 서있던 곳이다. 이 전환국은 원래 고종 22년(1885) 서울 소공동에 처음 만든 것이다. 당시 조선은 일본에서 동(銅)을 수입해 동전을 만들었는데, 그 동을 인천항으로 수입했다. 그러다 보니 이를 서울로 다시 운반해 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컸고, 이 때문에 항구에서 좀더 가까운 곳에 돈 만드는 곳을 두어 그런 번거로움을 덜자는 뜻에서 이곳으로 전환국이 옮겨왔던 것이다. 그러다 광무 4년(1900)에 다시 서울 용산으로 옮겨가는데, 이는 바로 전 해인 1899년에 인천∼노량진을 잇는 경인철도가 개통된 데 따른 것이다. 전환국이 서울로 다시 옮겨간 뒤 인천부가 새로 만든 부내면에 속하게 된 이곳에는 새롭게 마을이 생겼고, 1906년 부내면이 동을 몇 개 늘릴 때 전환국이 있었다는 점 때문에 전동(典洞)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 이름은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통폐합 때 일본식으로 산근정(山根町)이라 바뀌었다가 광복 뒤인 1946년 전동(錢洞)이 됐다. 야마네[山根]는 러일전쟁 당시 병참부의 사령관을 맡고 있었던 일본군 소장으로, 그가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공병대를 이끌고 이곳 전환국 청사에 주둔했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동네 이름을 그렇게 지은 것이다. 광복 뒤 전동(典洞)이 전동(錢洞)으로 바뀐 것은 ‘전환국이 돈(錢)을 만드는 기관’이었다는 점을 유추해 만들었거나, 전환국의 ‘전(典)’자를 ‘전(錢)’자로 잘못 알아서 붙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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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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