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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동인천동 자유공원

분류
중구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1960
인천을 대표하는 공원중 하나인 자유공원은 1888년 만들어진 우리 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응봉산(鷹峰山) 또는 응암산(鷹岩山)이라 불리는 자그마한 동산 위에 자리잡은 이 공원은 처음 만들어질 당시 만국공원이라 불렸다. 이는 인천항 개항 이후 인천으로 몰려든 서양 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던 만국지계(萬國地界) 안에 공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계(地界) 또는 조계(租界)는 원래 19세기 후반 중국의 개항 도시에 있었던 외국인의 거주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열강들이 중국에 진출하는데 근거지가 되었던 곳이다. 응봉산 아래 이곳에서도 외국인들이 살며 자체적인 행정권과 경찰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지계라 부른 것이다. 만국지계는 달리 각국지계(各國地界)라고도 불렸기에 이 공원은 각국공원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었다. 14만평이나 되는 넓은 면적의 만국지계에는 미국이나 영국 등 여러 나라의 서양인들이 살았는데, 그 위치는 일본인이나 청국인들이 모여 살던 일본지계와 청국지계 옆에 있었다. 일본지계가 7천평, 청국지계가 5천평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만국지계는 무척 컸던 셈으로, 이곳을 여러 개의 구역으로 나눠 구획정리사업을 하면서 이 공원도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우리 나라를 강제로 병합시킨 뒤 이들 조계는 일본의 압력으로 없어지게 돼 1913년 4월 만국조계에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청국조계도 없어지고 말았다. 그 뒤 일제는 지금의 인천여상 자리에 자신들의 신사(神社)를 세워 그곳을 동공원(東公園)이라 부르면서, 그 맞은편에 있는 만국공원의 이름을 서공원(西公園)이라고 바꾸었다. 1945년 광복이 되자 서공원은 다시 만국공원이라는 이름을 되찾았다. 그러나 한국전쟁을 겪고 난 1957년 이승만 정부는 우리의 건국기념일인 개천절에 이곳에 맥아더 동상의 제막식을 가지면서 공원의 이름을 자유공원으로 바꿨다.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맥아더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오늘에 와서 맥아더 동상은 민족 주체성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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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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