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현동(龍現洞)
용현동(龍現洞)은 구한말까지 비랑이 또는 비랭이라고 불리던 마을이다. 비랭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는데 첫째는 비룡리(飛龍里)가 잘못 전해져 생긴 이름이라는 것이다. 지금 용현동의 상당 부분이 인천항 개항 뒤에 바다를 매립해 생긴 땅인데, 옛날 이 앞바다에서 ‘장마때 용(龍)이 하늘로 날아(飛)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어 비룡마을로 불렸다는 해석이다.
조선 초기의 문신 심언광(沈彦光)이 남긴 싯구 중에 “(인천의) 비룡강(飛龍岡)에서도 바다가 잘 보인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 비룡강을 용현동 비랭이고개로 보는 사람도 있다. 또 한편에서는 이 일대가 바닷가라는 점을 따져 비랑이를 ‘파도[浪]가 나르는[飛] 곳’이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그저 만든 이야기일 뿐이고, 비랑이는 비탈 또는 벼랑을 뜻하는 우리 옛말 ‘비사’ 또는 ‘빗’에서 생긴 말로 보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요즘도 ‘빗나가다’ 등의 단어에 쓰이고 있는 이 ‘빗’은 중세어에서 벼랑을 뜻하는 별, 벼로, 벼루뿐 아니라 베루, 벼리, 베리, 베랑, 비앙, 벼락, 비룩 등 여러 가지 변형을 갖고 있는데 이중에 비랑이나 비랭이도 끼어있는 것이다.
현대어의 벼랑도 이중 ‘별’에 접미사 ‘앙’이 붙어 이루어진 말이다. 이 ‘빗’이나 ‘별’은 주로 비스듬히 기울었거나 비탈진 곳의 땅이름에 많이 사용됐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우리 나라에 ‘빗’식의 이름이 200여 곳, ‘벼랑, 벼로, 벼루, 벼리’식 지명이 100여 곳, 비탈의 변형인 ‘베틀’식 지명이 300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결국 비랭이는 ‘비탈진 곳’, 비랭이 고개는 ‘비탈진 고개’가 되며, 이곳이 바닷가에 서있는 고개여서 이런 이름이 생긴 것이다.
비랭이는 1906년 인천부(仁川府)가 동네 이름을 바꿀 때 비룡리와 독정리(讀亭里)로 나뉘어졌다가, 그 뒤 다시 한 글자씩 이름이 더해져 용정리(龍亭里)가 됐고, 이것이 광복 뒤에 용현동이 됐다. 비랭이고개의 유래로 따져보면 용현동(龍現洞)은 원래 ‘고개 현(峴)’자를 써서 용현동(龍峴洞)이 돼야 할 것인데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못 만들어진 이름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용현동에 있는 인하대학교는 학교 축제의 이름을 ‘비룡제(飛龍祭)’라 부르고 있으니, 이는 동네가 비룡마을에서 유래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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