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현동 낙섬
학익동 동양화학 앞에서 용현동을 지나 숭의동으로 넘어가는 큰 길에 낙섬 사거리가 있다. 지금은 매립과 도로 개설로 대부분 없어져 그 흔적을 찾기 어렵지만 몇 십년 전만 해도 이곳 앞바다에 있었던 작은 무인도 ‘낙섬’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이 주변이 온통 갯벌과 염전으로 뒤덮여 있던 시절,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낙섬’이라 불렸다는 이 섬은 그 모양 때문에 ‘똥섬’이라는 짓궂은 이름으로도 많이 불렸다. 지금의 ‘개항 100 주년 기념탑’에서 멀지 않았던 이곳에는 미군의 커다란 기름 저장 탱크와 함께 염전에 바닷물을 대는 저수지가 있어 어린 아이들에게 좋은 수영장이 돼주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서서는 이처럼 놀이터 정도의 역할 밖에 못했던 곳이지만 이 섬은 원래 조선시대에 원도(猿島)라 불리며 서해 바다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보면 “원도는 인천도호부 서쪽 12리 되는 곳에 있는데 제단이 있어 봄가을로 산과 바다에 제사 지낸다”고 기록돼 있다. 시대가 분명치는 않지만 세조대 이후부터 이곳에 원도사(猿島祠)라는 제당(祭堂)을 만들어 국가의 평온과 풍농,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인다. 『인천부읍지』의 기록에도 매년 봄, 가을마다 지방 수령인 인천부사(仁川府使)가 직접 나와 제사를 지낸 것으로 나와 있다.
원도사는 그러나 유학을 기본 이념으로 한 조선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라 유림들의 반대로 결국은 없어지고 말았는데 언제 없어졌는지도 확실치 않다. 이 같은 사실로 보면 낙섬은 그 이름이 육지에서 떨어져 있어서라기 보다는 몇몇 국어학자들의 해석처럼 ‘납(納)섬’, 곧 ‘제사를 드리는 섬’에서 유래했다가 발음이 바뀌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 형태는 여러 가지 변형을 갖고 있지만 산천과 바다에 제사를 지내는 일과 관련된 땅이름은 어디서든 흔히 발견되는 것이다.
원도의 존재는 지도에도 명확히 나타나 1861년 김정호가 제작한 『대동여지도』에 표시돼 있고, 1910년대 조선총독부가 만든 지도나 1937년 일본에서 제작한 관광객용 지도 「경승(景勝)의 인천」에까지 그 이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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