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월동(九月洞)
인천 시청이 있는 남동구 구월동(九月洞)은 구한말 인천부 주안면의 성말, 구월말, 못윗말, 전재울 등의 마을이 있던 곳이다. 1903년 인천부가 동네 이름을 정할 때 이곳은 성리(城里), 구월리(九月里), 지상리(池上里), 전자리(前子里)로 구분됐고, 1914년 전국의 행정구역이 통폐합 될 때 모두 합해져 구월리가 됐다. 결국 이들 지역 전체를 대표하는 이름으로서 구월말의 구월이 선택된 셈인데, 이에 대한 해석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일부 향토사학자들의 주장처럼 구월(九月)이 원래 구월(龜月)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지금 시청이 있는 구월동의 중심 지역이 거북이(龜) 등처럼 휜 언덕배기이고, 어찌 보면 반달(月)처럼 휘었다고도 해서 붙인 이름이라는 해석이다. 하지만 시청 주변 땅이 만월산 줄기가 뻗어 내려온 구릉 지역이기는 해도 그 모양이 거북 모양인지는 사실 확정하기 어렵다. 둘째는 옛날 이곳까지 인천 앞바다의 바닷물이 들어왔기 때문에 땅이 질었고 이 때문에 ‘구리울’ 또는 ‘구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 이것이 구월이라는 한자로 옮아갔다는 해석도 있다. 여기서 ‘울’은 마을을 뜻하는 우리말 ‘골’이 ‘굴’을 거쳐 바뀐 말로 볼 수 있지만 ‘구리’나 ‘굴’을 해석하기 어렵고, 구릉지대인 이곳의 땅이 질었다고 보기도 어려운 것이 이 해석의 문제로 보인다. 이와는 달리 어학적 입장에서 구월을 ‘앞산’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이때 ‘구(九)’는 원래 우리말 ‘앞’을 말하는 것이었는데 이것이 잘못 전달되거나 발음이 바뀌어 ‘아홉’이 됐고, 이것이 다시 한자로 바뀌며 ‘구(九)’가 된 것으로 본다. 또 ‘월(月)’은 ‘산(山)’이나 ‘높다’는 뜻의 우리 말 ‘달’이 한자로 바뀌며 그 뜻이 잘못 전달된 것으로 해석한다. 이렇게 보면 구월리는 결국 ‘앞산 마을’이라는 뜻이 되는데 문제는 어디를 기준으로 본 앞산인가에 있다. 조선시대 인천부의 진산은 문학산이었는데 옛날에 ‘앞’은 보통 남쪽을 의미했던 반면 구월동 지역은 이 산의 북쪽에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 해석이 분명치 않은 구월동에는 옛날 ‘오달기(또는 오닭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주막거리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는 이곳이 인천부 청사가 있던 문학산 쪽에서 서울로 가던 길목이어서 길가에 주막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공공누리
-
-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