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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유래

만수동(萬壽洞)

분류
남동구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4302
만수동(萬壽洞)은 구한말 인천부 조동면과 남촌면에 걸쳐 있던 지역이다. 새말, 담방리, 구룡골, 장승배기, 새골, 산밑말 등 여러 개의 마을이 있던 곳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들 동네가 한데 합해져 만수리가 되면서 새로 생긴 부천군 남동면에 편입됐다. 이것이 광복 뒤에 만수동이 된 것이니, 만수동은 결국 이전부터 있던 이름이 아니라 일제가 새로 만들어 붙인 이름이다. 조선시대에 발간된 『경기지』 등의 자료에는 만수리나 만수동이 보이지 않으며, 1917년에 발간된 『신·구 대조 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에 보면 부천군 남동면(조동면) 조곡리(鳥谷里)와 담방리(淡方里)를 만수리(萬壽里)라고 한 대목이 나와 그 유래를 알 수 있게 한다. 또 같은 해 발간된 지형도에도 ‘만수리(담방리)’라고 나와 담방리가 만수리가 됐음을 밝히고 있다. ‘만수’라는 이름은 좋은 뜻이지만 일제가 그 이름을 만든 것은 그 원래의 유래와는 전혀 관계없는 동네 이름을 붙임으로써 뿌리를 알 수 없게 만드는 우리 민족 문화 말살 정책의 하나였던 것이니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반면 연구자에 따라서는 만수동이 글자의 뜻 그대로 ‘장수(長壽)하는 동네’라는 뜻에서 붙여졌다고 하고 그 근거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들기도 한다. 즉 『조선왕조실록』에 “길주에 199세의 노인이 있고, 인천에도 역시 100세 노인이 있다”고 한 내용이 있는 것처럼 인천은 이전부터 장수하는 노인이 많았고, 이 때문에 만수동이니 장수동, 연수동 같은 동네 이름이 생겼다는 해석이다. 여기서 길주는 지금은 인천의 일부가 됐지만,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인천과는 다른 행정구역이었던 부평땅을 일컫는 이름이다. 그러나 문헌에 그 이름들이 나타나는 시기 등으로 볼 때 만수동은 일제가 자신들 마음대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목숨 수(壽)’자를 붙여 동네 이름을 지은 것일 뿐 실제 주민들의 장수 여부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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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 문의처 032-440-838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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