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동(長壽洞)
장수동(長壽洞)은 구한말 인천부 조동면(鳥洞面)에 속했던 지역으로 장자골, 만의골, 무네미 등 세 개의 마을이 있었다. 1871년 발간된 『인천부읍지』나 1843년에 발행된 『경기지』에 보면 조동면에 수월리(水越里), 곧 무네미나 만의리(晩宜里)의 기록은 보이지만 장자골에 대한 기록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마을은 1906년 인천부가 동네 이름을 확정할 때 한자로 장자리(壯者里), 만의리(晩宜里), 수현리(水峴里)로 바뀌었기 때문에 1910년경에 나온 『조선지지자료』에는 장자골이 장자동(壯字洞)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다. 1914년 전국적인 행정구역 개편 때 일제가 이들 3개 마을을 하나로 합하면서 장자리와 수현리의 앞 글자를 하나씩 따서 만든 이름이 바로 장수동이다. 그러나 두 개를 합해 이름을 지으면서도 장자리의 ‘장(壯)’은 ‘길 장(長)’으로 바꾸고, 수현리의 ‘수(水)’자도 자기들 마음대로 ‘목숨 수(壽)’로 바꾸어 버렸다. 장수동뿐 아니라 만수동, 수산동, 연수동이나 청학동, 송학동, 선학동, 문학동 등이 모두 이때 일제가 원래 그 동네의 땅 이름 유래와는 관계없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수(壽)’나 ‘학(鶴)’자를 멋대로 넣어 만든 지명들이다. 장자리라는 지명은 다른 지역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것인데 대개 ‘힘 잘 쓰는 장사가 살았다’거나 ‘부자(장자)가 살았다’ 또는 ‘맏아들(장자)이 모여 살았다’는 등의 전설로 이어지곤 한다. 전설로만 보면 장수동의 장자골은 이들 가운데 8명의 장사 이야기와 관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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