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동(壽山洞)
수산동(壽山洞)은 구한말 인천부 남촌면에 속해 있던 곳이다. 흔히 ‘바리미’라 불렸고, 이 발음이 변해 바렷, 배렷, 바래티, 배래터라고도 했다. 또는 한자로 발산(鉢山)마을, 발촌(鉢村)이라고도 했는데 향토사학자들은 이 모두가 마을에 바리때, 곧 ‘절에서 쓰는 나무 밥그릇’처럼 생긴 산이 있어 생긴 이름으로 보고 있다. 한편에서는 이와 달리 ‘발산’의 ‘발’을 ‘밝다’는 뜻에서의 ‘발’로 보기도 한다. 이는 옛날 하늘이나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밝(光)사상’, 곧 ‘천신제(天神祭)’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곳의 산에서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발산이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양쪽 모두 정확히 고증되지는 않는 해석이다. 발산마을 주변에는 찬우물과 경신(慶信)마을 등의 자연마을이 있어 한자로는 냉정촌(冷井村), 경신리라고도 했고, 이밖에도 능골, 황굴 등의 마을이 있었다. 이들 마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천군이 새로 생길 때 한데 합쳐져 부천군 남동면 발산리가 됐다. 발산리는 1940년 부천군에서 다시 인천부로 편입되며 일본식으로 ‘수정(壽町)’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이는 일제가 우리 땅을 완전히 일본 영토로 편입시킨다는 뜻에서 전국의 땅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꾼 데 따른 것이다. 일본인들은 우리 나라의 땅 이름을 바꿀 때 자신들이 좋아하는 ‘목숨 수(壽)’자를 많이 썼는데, 인천에만 해도 연수동이니, 만수동, 장수동 등 하는 이름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발산리도 자신의 유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수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것이 광복 뒤인 1946년 동네 이름을 새로 지을 때 고쳐지지 않고 그냥 비슷한 뜻의 수산동으로 정해짐으로써 그 이름에서 끝내 일제의 잔재를 씻어내지 못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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