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 온수동
고려 의종(毅宗) 19년(1165)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 부평의 옛 이름) 청사를 오류동(梧柳洞)에서 계양산 중구봉(重九峯) 아래로 이전한 이후 고려 왕조가 망할 때까지 옛 부평 고을의 청사가 있던 곳으로 ‘온수굴’·’온수골’ 또는 ‘온수동’이라 부르고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있는 큰 암벽 밑에 항상 맑은 물이 고여있는 샘이 있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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