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連喜洞)
신라 때 부녀자들에게 길삼[織造]을 가르쳤기에 인근 마을에서 여자들이 많이 모여들어 ‘여희(女姬)’ 마을이라 한 것이, 후에 변음되어 ‘연희(連姬·連喜)’ 또는 ‘연일’로 부르게 되었다.
이곳에는 병인양요 후 서해안 방어를 위하여 연희진(連喜鎭)이 설치되기도 하였다.
샛말[間村]
연희동과 공촌동(公村洞)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서 ‘샛말[間村]’이라 불렀다. 이곳은 초계정씨의 누거지이다.
용의머리·용머리[龍頭山] 마을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가 바닷가에서 뭉치었는데, 그 형상이 마치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병인양요후 연희진이 설치되는 동시에 연희포대가 설치된 곳이다.
군길마을
이전에 군인들이 지나다니던 길 주위에 마을이 생겼기에 ‘군길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양가말[梁家村]
고려 때 양씨(梁氏)들의 집성촌(集姓村)이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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