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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이장용(李藏用 : 고려 원종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1007
고려의 문신으로 중서령(中書令) 자연(子淵)의 6대손이고, 추밀원사(樞密院使) 경(儆)의 아들이다.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계속 승승장구 승진해 올라갔다. 원종 4년(1263) 왕을 따라 원[몽골]에 입조 수행하여 해동현인(海東賢人)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돌아와서는 ‘문하시랑 동중서 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에 오르고, ‘경원군 개국백(慶源郡開國伯)’에 봉해졌으며 태자 태사(太子太師)를 더하였다.
원종 7년(1266) 원(元)이 병부시랑 흑적(黑的) 등을 일본에 보내어 초유(招諭)케 하는 것에 반대하여 이를 관철시키고 이 해에 감수국사가 되어 동수국사(同修國史) 유경(柳璥), 수찬관 김구(金垢), 허기(許琪) 등과 신종(神宗), 희종(熙宗), 강종(康宗)에 이르는 3대 실록의 편찬을 주도하였다. 이듬해 문하시중에 오르고 원종 9년(1268) 절일사(節日使)로 원에 다녀왔으며, 여러번 지공거(知貢擧)를 역임하였다. 원종 11년(1270) 임연(林衍)이 원종을 폐하려 할 때 이를 막지 못할 것을 알고 손위(遜位)를 언급했다가 면직되어 서인(庶人)이 되었다. 경사(經史)에 밝고, 학문 각 분야에 거의 통달하였으며, 원과의 외교에 공을 세웠고 일찍이 개경 천도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승휴(李承休)를 천거하여 관직에 나아가게 하기도 했다. 시호는 ‘문진(文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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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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