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천인물

이암(李햺 : 고려 공민왕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고려의 문신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옮겨다니며 승진도 했으나, 왕이 엎치락 뒤치락 바뀌는 풍파 속에서 시달림 또한 적지 않았다. 공민왕 12년(1363) 왕이 홍건적의 침략으로 안동으로 피난할 때 호종한 공로를 인정받아 1등 공신으로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에 봉해지고, ‘추성수의동덕찬화익조공신(推誠守義同德贊化翊祚功臣)’이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글씨에 능하여 초서(草書)와 행서(行書)가 중국 조맹부(趙孟쯘)에 필적한다고 알려졌다. 저서로 공민왕 12년에 편저한 『단군세기(檀君世紀)』가 있으며, 그 밖에 『태백진훈(太白眞訓)』, 『농상집요(農桑集要)』 등이 ‘행촌삼서(杏村三書)’로 알려지고 있다.
행촌 이암 선생은 왕을 안동으로 호종하여 공신 작호를 받고서는 다른 벼슬들을 모두 내놓은 다음 강화 선원리 행촌에 은거하면서 자신의 아호를 그곳 행촌의 지명을 따 행촌(杏村) 또는 홍행촌수(紅杏村첤)라 하고 해운당(海雲堂)을 짓고 저서를 남겼다.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 문의처 032-440-8382
  • 최종업데이트 2025-08-28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