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암(李햺 : 고려 공민왕 연간)
고려의 문신으로 문과에 급제하고 여러 벼슬을 옮겨다니며 승진도 했으나, 왕이 엎치락 뒤치락 바뀌는 풍파 속에서 시달림 또한 적지 않았다. 공민왕 12년(1363) 왕이 홍건적의 침략으로 안동으로 피난할 때 호종한 공로를 인정받아 1등 공신으로 ‘철성부원군(鐵城府院君)’에 봉해지고, ‘추성수의동덕찬화익조공신(推誠守義同德贊化翊祚功臣)’이라는 호를 하사받았다. 글씨에 능하여 초서(草書)와 행서(行書)가 중국 조맹부(趙孟쯘)에 필적한다고 알려졌다. 저서로 공민왕 12년에 편저한 『단군세기(檀君世紀)』가 있으며, 그 밖에 『태백진훈(太白眞訓)』, 『농상집요(農桑集要)』 등이 ‘행촌삼서(杏村三書)’로 알려지고 있다.
행촌 이암 선생은 왕을 안동으로 호종하여 공신 작호를 받고서는 다른 벼슬들을 모두 내놓은 다음 강화 선원리 행촌에 은거하면서 자신의 아호를 그곳 행촌의 지명을 따 행촌(杏村) 또는 홍행촌수(紅杏村첤)라 하고 해운당(海雲堂)을 짓고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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