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의 세 유생(儒生 : 조선 선조 연간)
부평 고을에 사는 이언복(李彦馥)과 동면 박촌동의 임무영(林茂榮), 계산동 박대양(朴大陽)은 부평 향교의 학생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병은 부평 고을로 침투해 와서 부평부 청사와 향교에 불을 질러 그 일부가 소실되었다. 그 당시 이언복을 비롯하여 임무영, 박대양 등은 향교에 모셔진 공자와 열성들의 위패를 계양산성(桂陽山城) 산정에 있는 장사굴 속으로 옮겼다가 나라가 평정을 되찾은 후 다시 향교에 봉안한 공로가 인정되어 세 사람 모두에게 생원(生員)의 벼슬이 내려지고 부역을 면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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