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천인물

양지(梁誌 : 조선 선조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594
양지는 정선현감 재직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경기도 삭녕(朔寧), 연천 전투에 참가하였다. 당시 경기도 감사 심대(沈垈)의 부관이 된 그는 병조좌랑 강수남(姜壽男), 부사 윤건(尹健), 안성군수 이몽태(李蒙台), 삭녕군수 윤경원(尹慶元) 등과 함께 적의 북상을 차단하기 위하여 연천군 경계인 징파도 나루에서 적과 교전했다. 적의 대군은 밤을 이용하여 쳐들어 왔는데, 양 지 등은 오로지 하늘에 운을 맡기고 싸울 뿐이었다. 그들은 삭녕 감영에 진을 치고 적의 북상 보급을 차단하였다. 철원에 주둔하고 있던 왜장 가토(加藤淸正)는 첩자를 시켜 경기도 감사 심 대의 예하 부대를 샅샅이 탐지한 연후 일시에 쳐들어 왔다. 드디어 백병전이 벌어졌으며, 윤경원은 장창을 잡았고, 양 지는 큰 칼을 휘둘르며 용전분투하였으나 중과부족으로 모두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전란이 끝나자 순절한 그들의 충성심이 인정되어 충신 칭호와 함께 벼슬을 높여 추증하고 표절사(表節祀)를 세웠다. 그들의 후손들은 매년 10월 18일 군수 주재로 그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으며, 정조 20년(1796)에 양 지에게 공조판서(工曹判書)가 다시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민(忠愍)’이다.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 문의처 032-440-838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