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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최원(崔遠 : 조선 선조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760
최원은 선조 13년(1580) 전라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사 천명을 거느리고 의병장 김천일(金千鎰), 월곶첨절제사(月串僉節制使) 이빈(李?)과 함께 여산에서 적군의 진출을 막아 싸웠다. 김천일 등과 더불어 남원, 순창을 거쳐 북상하던 중 군사 4백 명을 거느리고 서울로 향해 떠났던 전라감사 이광(李光)이 용인에서 패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득이하게 강화도로 들어가 주둔지로 삼고 군사를 모집하는 한편, 한강 연변 지역을 왕래하면서 적의 후방을 공략하고 해상으로 의주에 있는 왕의 행재소(行在所 : 임금의 임시 주재처)와도 연락을 취하였다. 다음해 영덕(永德)으로 나아가 왜군을 격파하고 2백여 명을 참획(斬獲)하여 그 공으로 상호군(上護軍)이 되었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중앙으로 들어와서 한강 수비의 소임을 맡았다. 그해 후위대장(後衛大將)이 되어 전위대장 조경(趙儆)과 함께 훈련도감 군사를 거느리고 수도 방위 책임을 맡았다. 왜란이 평정된 뒤 선조 33년(1600)에는 동지중추부사에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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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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