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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황신(黃愼 : 조선 광해군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647
황신은 선조 16년(1582) 사마시에 급제하고, 1588년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벼슬살이 중이었던 1591년 신묘사화가 일어나자 정철(鄭澈)의 일파로 몰려 파직당하고 강화로 내려갔다. 1596년 통신사로 명나라 사신 양방형(楊邦亨)과 심유경(沈惟敬)을 따라 일본에 다녀온 뒤 화의가 결렬되자 조정으로 하여금 명나라의 내원을 청하게 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랐다. 1601년 여러 관직을 거쳐 대사헌이 되었으나, 사은사로 명나라로 가던 도중 정인홍(鄭仁弘)의 탄핵을 입어 삭탈관직을 당하자 연고지 강화로 돌아왔다. 선조 39년(1606) 임진왜란 때의 공이 인정되어 ‘호성선무원종공신(扈聖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고, 광해군 4년(1612) 역시 임진왜란 당시 광해군을 시종한 공로로 ‘위성공신(衛聖功臣)’으로 봉해졌다. 이듬해 일어난 계축옥사 때 무고로 쫓겨나 옹진에 유배되어 배소에서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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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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