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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송윤(宋玧 : 조선 인조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785
송 윤은 부평 검암동에서 살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청나라 군사가 부평 고을에도 침입해 들어왔다. 부평부 청사와 향교가 불에 타고 있는 것을 목격하자,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불길에 쌓인 향교로 뛰어들어 공자를 비롯한 열성의 위패를 모시고 탈출해 나왔다. 그리고 이 위패들을 공촌동 벌판에 은밀히 안치시켜 두었다가 난이 평정된 뒤, 향교 자리에 가막을 짓고 봉안하여 크게 찬사를 받았다. 그는 인조 26년(1648)에 생원(生員)이 되고, 이어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겸오위도청부부총관’이 되었다. 또한 향교 재건에도 공을 세워 ‘청금록(靑衿錄)’ 제1호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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