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천인물

강위빙(姜渭聘 : 조선 인조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569
강위빙은 선조 36년(1603)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였다가 학행으로 벼슬에 올랐으나, 광해군 대에는 여러 번 내외 관직에 보직되었으나 출사하지 않았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을 계기로 벼슬길에 나아갔고,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익찬으로서 뒤늦게나마 강화도로 파견되어 봉림대군(鳳林大君), 인평대군(麟平大君) 등을 배종, 호위하였다. 다음해 강화성이 적에게 함락되어 포로가 되었으나, 끝내 항복을 강요하는 위협에 굴하지 않고 “내 몸이 끊어질 수는 있으나, 너희들 앞에 무릎을 꿇을 수는 없다”고 버티어 순절하였다. 효종 8년(1657)에 좌승지에 추증되었고, 그 뒤 고향인 강화에 충신정문(忠臣旌門)이 세워졌으며, 순조 11년(1811)에 다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고, 강화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었다.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 문의처 032-440-838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