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흥업(姜興業 : 조선 인조 연간)
강흥업은 강화읍 옥림리 태생으로 권필의 문하였다. 선조 29년(1596) 무과에 급제하여 무관 벼슬로 훈련원참정(訓練院參正)에 이르렀다. 병자호란이 일어난 다음해 정축란 때, 강화도를 공략하던 청나라 군사가 갑곶진에 이르자 강화부중군(江華府中軍)인 황선신(黃善身)이 이에 맞서 싸웠다. 우부천총(右部千摠)이었던 강흥업은 중군 황선신 장군이 전사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두려움없이 끝까지 사투하다가 드디어 전사했고, 적군은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노장(老將)으로 분투하는 모습에 적병도 백수장군(白首將軍)이라 두려워하면서 칭송하였다고 한다.
황선신, 구원일(具元一) 등과 함께 3충신으로 일컬어졌으며, 그후 병조참의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충렬(忠烈)’로서 강화 충렬사에 배향되었다. 강화읍 옥림리 구저에 정문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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