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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김익겸(金益兼 : 조선 인조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1227
김익겸은 서포(西浦) 김만중(金萬重)의 아버지로 인조 13년(1635) 생원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1636년 후금의 태종이 국호를 청(淸)으로 고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하여 춘신사(春信使)로 파견된 나덕헌(羅德憲), 이확(李廓) 등이 청나라 사신 용골대(龍骨大)와 함께 귀국하자 성균관 유생들을 모아 청나라 경축 행사에 참가한 사신과 용골대를 주살하자고 주청하였다. 이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강화로 가서 성을 사수하며 항전을 계속했다. 그러나 전황은 점차 불리해지고 묘사주(廟社主)를 받들어 강화에 체류하고 있던 기로사(耆老社) 원로 김상용이 남문루에 화약궤를 올려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 자분(自焚)코자 하였다. 이에 영의정을 지낸 윤방(尹昉)이 달려와 애써 만류하였으나 김상용은 권순장, 김수남과 함께 자분하고 말았다. 김익겸 역시 이때 강화에서 순절했는데 그같은 사람이 모두 30명이 넘었다.
뒤에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광원부원군(光源府院君)’에 추봉되었다. 시호는 ‘충정(忠正)’이며, 강화 충렬사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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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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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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