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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인물

이령(李翎 : 조선 인조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552
이령은 참봉 때 부모와 함께 온가족이 강화로 피난하였다가 의병에 가담하여 광진(廣津)을 수비하던 중, 갑곶진이 함락되자 군사들이 모두 흩어지므로 홀로 분함을 참지 못하고 물에 빠져 자결을 기도하였다. 그러나 부모가 생존하신 까닭에 죽지를 못하고 가족과 함께 길상산(吉祥山)으로 다시 피난하던 도중 적을 만나게 되어 부친과 합세하여 대항했다. 부친이 적에게 항거하여 굴하지 않는 것을 보고 형 핵(탡)과 함께 부친을 따라 죽으려 하였다. 그러자 부친이 적극 만류하여 이르기를, ‘나는 나라에 후은(厚恩)을 입어 죽음이 아깝지 않으나, 너희들은 서생(書生)이니 죽을 의리가 없다’고 하였다. 이에 령이 맞받아서 ‘아버지께서 죽는 것을 피하지 않으시니, 자식이 어찌 살기를 도모할 수 있습니까? 아버지는 나라를 위하여 죽고 지어미는 지아비를 위하여 죽을 뿐입니다’ 하면서 죽을 결심을 굳혔다. 그러한 때에 침범해 온 적이 가족에게 해를 가하려하자 어머니 윤씨는 적의 포로가 될까 염려하여 불에 뛰어들어 화상을 입었다. 이에 이령은 어머니를 업고 형과 함께 도망하다 적의 화살을 맞고 즉사했다. 아내 오씨, 형수 김씨도 따라 자결하였다. 후에 충절로서 정문이 세워지고 지평에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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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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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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