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인천인물

이세주(李世胄 : 조선 숙종 연간)

출처
2002년도 인천광역시사
담당부서
문화재과 (032-440-8383)
작성일
2013-12-01
조회수
779
이세주는 부평 이씨로 이조참판을 추증받은 이진재(李震載)의 맏아들이다. 인천 학익동(옛 제운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를 제운(霽雲)이라 했다. 그는 학문을 숭상하여 관도에 오르지 않고 오로지 경학(經學)에만 힘썼으며, 찬술(撰述)에는 반드시 의리를 앞세워서 스승과 학자들이 그 전아(典雅)하고 정확함에 감복하였다. 나이 40이 넘으면서부터 후진 교육에 전력하여 그 문하에서 수학한 학생이 수백 명에 이르렀는데 그 중 과거에 오른 자가 세 사람이고, 성균관에 들어간 자가 10여 명이었으며, 주현(州縣)의 향시(鄕試)에 합격한 자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같은 문중의 이조판서를 지낸 이세화(李世華)도 제운 형님이 참 형님이고, 금세의 성인(聖人)이니 우리 가문의 자제들은 이 형님을 사표(師表)로 삼자고 했다 한다.
숙종 33년(1709) 영의정 최석정(崔錫鼎)의 상주에 의해 숙종은 가선대부(嘉善大夫)와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제수하였으며, 이듬해 동지중추부사를 제수하고 2대를 추영(推榮)하였다. 그리하여 이세주는 사은(謝恩)차 입성(入城)하여 임금에게 예(禮)를 올렸는데, 그의 모습이 너무나 황홀하여 지켜보는 백관(百官)이 모두 지상신선(地上神仙)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공공누리
OPEN 공공누리 출처표시 상업용금지 변경금지 공공저작물 자유이용허락

이 게시물은 "공공누리"의 자유이용허락 표시제도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자료관리담당자
  • 담당부서 문화유산과
  • 문의처 032-440-8384
  • 최종업데이트 2023-10-17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