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양(趙復陽 : 조선 현종 연간)
조복양은 인조 16년(1638)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을 거쳐 많은 관직을 옮겨다녔으며, 현종이 즉위하면서 적극적인 진흥정책을 건의하였다. 현종 4년(1663) 강화유수에 부임하여 군기를 수리하고 병선을 많이 주조하도록 하여 강화 방위를 공고히 하기에 노력하였다. 건조한 병선들은 각 진보에 소속시켰으며, 대동계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이를 설치하였다. 여씨향약(呂氏鄕約)을 모방하여 그 교조(敎條)를 백성에게 가르치니 백성들이 감동하였으며, 춘추로 좋은 날짜를 가려 연세 높은 어른들을 초대하고 경로잔치를 베풀어 극진히 대접하였다. 대청포(大菁浦), 승천포(昇天浦), 가릉포(加陵浦)의 삼포(三浦)에 긴 제방을 쌓고 간척사업을 벌려 천여 마지기의 옥토를 개간하였으며, 어장을 개발하여 어민에 돌려주니 크게 기뻐하였다. 그 뒤 우참찬, 대제학, 이조판서, 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광주(廣州) 명고서원(明皐書院)에 제향되었고, 저서로는『송곡집』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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